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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성탄절에 만난 사람들

요술공주 셀리 2024. 12. 24. 16:47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핀란드 셋방살이'까지 시청했는데도 왜 잠이 오지 않는 걸까? 아무래도 불 낼 뻔했던 일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많이 놀라긴 한 모양이다. 뒤척이다가 새벽에 잠들었으니, 늦잠은 당연한 일. 거실에 나오니 기다란 햇살이 먼저 반긴다.

뭔가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이 심심해서 또다시 실과 바늘을 잡았다. 작년에 사놓은 짙은 밤색 실을 꺼내 이 번엔 며느리 스웨터를 짠다.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내 카디건과 같은 디자인으로 시작했는데, 꽤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도 별 진전이 없다. 청소도 하고 옷장 정리도 하는데, 그제야 할 일이 생각났다. 오늘 모임에 가져갈 요리. 버섯과 채소, 새우를 준비해서 후루룩 요리 하나를 만들었다.



옥이의 아이디어로 우린 오늘 방어 파티를 계획했다. 겨울 한 철, 방어회를 꼭 먹어야 한다며 옥이는 제주도에서 방어회를 시켰다. 방어는 어제 도착해서 냉장고에서 하루를 숙성했다. 방어회가 오늘의 메인 메뉴. "언니, 분위기를 위해 조명등도 챙겨 와요." 옥이의 부탁이니 잊지 않도록 챙겨두고, 요리와 플래시를 챙겨 윗집으로 갔다.

잘 차려진 식탁에 멋진 사람들이 앉아 있다. 반가운 사람들, 낯익은 사람들이다. 방어회가 소고기처럼 큼직하게 썰려있고 묵은지와 샐러드, 내가 한 요리까지 더해지니 상다리가 휠 것 같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만큼 술판이 벌어졌다. 술의 힘일까? 나이차도 있고, 고향도 다르고, 살던 곳도 각기 다른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참 잘도 어울린다. 참 합도 좋다. 맛있는 음식, 아니 술 때문일까?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큰 방어 반마리가 웃음소리에 사라져 버렸다. 진정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갈치회, 밴댕이회, 멸치회, 고등어회....... 우리 다 먹어봅시다."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여자들은 또 그들대로 이야기 삼매경이다. 마트 이야기, 퀼트 이야기, 농사 이야기, 난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등 신이 나고 재미난 이야기가 끝도 없다. 만난 지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끈끈함이 밴 의자가 무겁기만 하다. 창 밖엔 어둠이, 여섯 명이 둘러앉은 식탁엔 정이란 따뜻함이 쌓여만 간다. 복딱복딱, 보들보들한 이불 같기만 하다. 아기 예수님의 우렁찬 울음소리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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