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래
오랜만의 햇볕이 반갑기만 하다. 오늘 같은 날은, 빨래하기 좋은 날이다. 겨우내 깔개로 사용한 카펫을 빨아 햇볕에 널고 커피를 마신다. 앞산엔 여전히 눈이 쌓여있지만 3월 초순이다. 간질간질 코 끝에 바람이 살랑인다. 하늘멍을 하고 있을 때, 또롱또롱~ 윗집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달래 캐러 가자."
한 달여 만이다. 자주 내리는 눈과 궂은 날씨로 한동안 등산을 못했었다. 호미 하나 메고, 동생이 선물로 준 신박한 앞치마를 두르고 우린 뒷산 입구에 헤쳐 모였다.
여전히 잔설이 남아 있는 산. 과연 달래가 있을까? 눈길을 밟고 한참을 올라가니 한 달 전만 해도 얼어 있던 계곡이 졸~졸~졸. 사람들은 참 신통도 하다. 어쩜 흐르는 저 계곡물소리를 '졸졸졸'이라고 표현했을까? 허투루 들어도, 열심히 들어도 산골짝 계곡은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와, 달래다." 앞서가던 언니의 함성에 쪼르르 따라가 보니 실낱같은 초록색 새싹이 마른 나뭇잎 사이에 뾰로롱 튀어나와 있다. 그런데 마트에서 보던 달래와 사뭇 다르다. 너무 가늘고 키가 작아 아직 캐기에 이른 것 아니냐 물으니, 산달래는 이렇게 작아도 충분히 자란 것이라고 한다. "키가 작아도 뿌리가 통통한 것으로 캐라."는 언니 말대로 달래를 찾아보는데, 난 찾을 수가 없다. 이제 막 올라오는 달래와 똑 닮은 잡초만 보일 뿐.
"진달래 말고 산달래야, 달래야, 달래야, 어디 있니?"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보지만 달랜다고 줄 달래가 아닌가 보다.
그렇게 한참을 찾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주르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앗, 달래다." 달래는 겨우내 쌓인 마른 나뭇잎 이불 밑에 숨어 있었던 것. 엉덩방아 덕분에 나뭇잎 밑에 있는 달래를 발견하게 되었다. 호미로 나뭇잎을 걷어 내면 천지가 달래밭이다. 이젠 일사천리. 그냥 철퍼덕 앉아서 요기조기 호미로 캐내면 ㅇㅋ~! 산골 바람이 제법 차가운데도 달래 캐느라 함께 온 일행 4명 모두 묵언수행 중이다. 달래 삼매경......
갑자기 무서움에 오싹해진다. 함께 온 일행이 보이지 않으니 우왕, 설마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언니---, 문구씨...."
"예. 그만 내려갑시다."
한 시간은 너끈히 지났을 것 같다. 그제야, 산속엔 조곤조곤 사람들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저녁엔 달래와 냉이를 넣고 된장찌개를 할 거예요."
"저흰 매콤 새콤 달래간장을 해서 먹을래요."

문구씨네 식탁엔 상큼한 달래간장이 놓여있고, 우리 집엔 구수한 된장찌개가 끓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런데, "아고, 힘들어." 실낱같은 달래를 다듬는 시간이 캐는 시간보다 길고 힘들 줄이야......
에헴, 식탁에 봄을 들이는데 그깟 다듬는 데 걸리는 시간쯤이야, 참아야 하느니라......
예. 예. 산할아버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루한 시간은 혼잣말로 중얼중얼.
오늘 저녁 식탁은, 보글보글 끓는 된장에 달래와 냉이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스읍, 침샘을 자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