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 자연미술(이응우)
인도의 BTS팬 : 인도의 중북부 오지마을 어린 학생들이 자신들은 BTS의 아미라며 ‘안녕하세요? 참 반가워요!’라고 외치며 나를 환대해주었다.

어느 미술전문가로부터 “야투의 자연미술은 한국의 미술사에서 어떤 의의와 중요도를 지닌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의를 받았다. 우리의 ‘자연미술운동’을 자평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 비칠지 의문이지만 누군가 평가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속 한국미술은 조선 후기 겸제나 추사, 표암 같은 훌륭한 선지자가 있었으나 우리의 미술사는 주체적 역사를 갖지 못했다고 본다. 일제강점기 도래한 서양미술이 해방 후 현재까지 주류를 형성하며 모든 장르의 모든 예술인이 서구의 흐름을 주목했다.
야투가 “자연미술” 운운할 때 국내의 모든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서구 미술사에서 본 적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외의 흐름을 아는 분들이 혹시 대지미술 아류 아닌가? 했었다. 그만큼 우리는 서구 편향적 세계관에 익숙했다.
야투의 자연미술을 처음 가치 있는 사건으로 인식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클라우스 버뮬러(Claus Bümuler) 교수였다. 그는 북부 독일의 혁신적인 미술이론가로서 대학에서 ‘자유미술강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교실에서 한국의 유학생 임동식이 공부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대단한 인연이었다.
당시 버뮬러교수에게 임선배를 통해 전해진 야투의 작업은 그가 처음 접하는 새로운 것이었다고 했다. 1992년 독일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야투의 대부분 작가와 작업을 인지하고 있을 만큼 야투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늘 한국방문을 꿈꾸고 있었다고 들었다. 임 선배가 그의 교실에서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도 야투의 자연미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버뮬러 교수 : 1992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 버뮬러 교수를 처음 만났다. 그는 호방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모시옷이 아름답다며 흰 고무신 대신 신고 있는 가죽 샌들을 딱 지적하는 날카로움과 함께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우리 미술사를 통해 국내에서 발생하여 외국으로 전해진, 더욱이 저들도 즐겁게 동참하여 새로운 미술의 장르로 발전한 예가 있었던가요? 있다면 우리의 자연미술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자연’자체다. 함석헌 선생은 마음과 혼의 혁명을 통해 인생의 거듭남을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했다. 나는 “자연에 대한 획기적 인식의 전환”을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고 보며 자연미술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 중 하나라고 본다. 그리고 이 미술운동은 ‘Made in Korea’다.
GNAP-India 2015 : 인도 예술유목 중 구자라트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오랜 세월 인도에 살며 그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