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속이 빈 소파

요술공주 셀리 2024. 3. 24. 12:00

소파를 바꿨다. 옷 하나를 사도 몇십 년을 입는 사람이 강원도로 이사 오면서 새로 산 소파를 5년 만에 바꾸었으니 내 사전에는 없는 일이 생겼다. 서울에서 사용하던 소파는 강원도 작은 집에 맞지 않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결혼한 새 신부, 며느리에게 반 강제적으로 맡기다시피 넘겨주고 왔다. 며느리는 신혼집에 화사한 새 소파를 들이고 싶었을 텐데, 시부모가 사용하던 짙은 밤색 소파를 고맙게도 잘 사용해주고 있다.

집이 작다고 가급적 작은 소파를 산 것이 화근이었다. 좁고 낮은 소파를 샀는데 '속 빈 강정'이었다. 겉은 번지르르 꽤 있어 보였지만 앉아도 불편했고, 누워도 비좁아 터져 움직이기 힘들었다. 눈요기용, 비주얼용, 손님 접대용이었었다.

덩치가 큰 소파부터 부엌의 아주 작은 티스푼까지 살림 초단인 나는 물건 사기가 두렵다. 나름 잘 구매했다고 스스로는 만족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빈' 소파처럼 실수하기 일쑤여서 그릇 사는 일도 침구 사는 일도 모두 동생과 상의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새 소파는 동생이 귀국하면 사려고 했었다.
그런데, 윗집의 새로 산 소파를 보게 되면서 급기야 오늘 새로 소파를 들이게 된 것이다.
살림 초단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편안함을 생각해야겠기에 몇 번을 찾아가 자로 재보고 앉아보고, 누워보기를 여러 번. 신중의 신중을 기하기 위해 샘플 색상도 마다하고 윗집 소파와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색상을 선택한 것이다. 3인용을 샀는데, 4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다. 가구를 새로 들이니 몇 안 되는 가구와 소품을 다시 배열했다.
영, 낯 선 풍경. 익숙한 내 집이 어색하기도, 새 집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덩치가 커진 소파 덕에 거실은 더 작아진 느낌이다. 편안함은 얻었고, 거실은 작아졌으니 same same.

우리 속담에 '속 빈 강정'이란 말이 있다. 겉은 화려하고 실속이 없을 때 자주 비유하는 말이다. 모양은 그럴싸하나 사용하기 불편했던 소파 때문에 비용도 두 배, 설치 등 수고로움도 두 배였지만 이 나이에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아니, 이 나이이기에 또 배운다.
이웃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속 빈 강정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