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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도살꾼 루디(이응우)

요술공주 셀리 2024. 4. 8. 15:53

독일 자연미술가를 찾아
 

루디와 나 : 시그마링겐의 어느 낡은 성에서 그와 함께 현장답사 중 찍은 사진

 
 

1. 개 잡는 사람 루디
친구의 이름은 ‘Hundefänger Carl Rudi Domidian’이다. “험상궂게 ‘훈데펭거’가 뭐람!” 대부분 사람은 그의 이름을 소개받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도 1991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를 알고 나면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인지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은 “꼭 산타할아버지처럼 생겼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는 한 예술가 보다는 미술을 좋아하는 철학자 같은 사람이다. 학창 시절 조금은 거칠고 급한 성격이라 주먹질도 곧잘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리기와 만화를 좋아했던 그를 보고 선생님이 그의 부친께 화가수업을 권유했으나 보수적인 부친의 완강한 반대로 일반 학교에 진학 공무원 또는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졸업 후 어느 회사에 입사해 지점장으로 돈벌이로는 괜찮았는데 그 일이 자신의 궁극적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다른 길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한때 목수 일을 배웠으나 별 흥미가 없어 결국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약간 늦게 그것도 특별히 학교에서 전공하거나 사사하지 않고 완전히 독학으로 예술가가 된 것이다. 20대 중반 그는 자기 방식대로의 수채화와 오브제 작업에 몰두했다. 특히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새의 깃털, 뼛조각, 깨진 그릇 등을 활용한 작업은 자연미술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오늘날까지 그가 즐겨 활용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자유로움이 가장 대표되는 느낌이다. 그가 만일 미술학교에 들어가 남들처럼 전형적인 화가수업을 받았으면 현재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초기 화가 수행 시절 남다른 표현 방법으로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자기 고향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배운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가를 역으로 생각해 볼 문제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제대로 잘 배우면 좋지만, 자칫 운이 없어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평생 돌아오지 못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루디 : 루디는 작가 겸 시의 삼림감시 모니터로 일하며 약간의 급료를 받는 모양이다. 따라서 습관처럼 산에 오르며 작업을 한다. 주변의 산에는 가는 곳마다 그의 작업들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산을 오르며 자신의 작업을 둘러보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보완하기도 한다. 이 사진은 그의 아이콘 같은 깃털 작업을 보충하고 있다.

 
2. 아름다운 시그마링겐(Sigmaringen)

시그마링겐의 성 : 시의 한복판을 도나우강 상류가 관통하고 언덕 위 오래된 성이 매우 낭만적이며 아름답다.

 
 
친구 루디를 방문한 4박 5일 중 3일은 매일 5~6시간씩 시그마링겐의 숲과 들, 강변 골짜기 오래된 성 등 대부분 그의 작업 권역을 정강이에 알이 배도록 돌아다녔다. 이곳은 유럽 여러 나라를 휘돌아 흑해로 들어가는 도나우(다뉴브)강이 시작되며 자연과 도시가 참 아름답게 어우러진 느낌이다. 루디는 늘 일상처럼 수 킬로미터를 걷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걸음을 멈추고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행으로 또는 자연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그의 숲은 늘 새로운 작업과 전에 한 작업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대부분 작업은 보수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손을 떠난 작품들은 자연의 현상 또는 야생동물, 더러는 인위에 의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는 그것을 또한 즐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보충하는 작업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의 아이콘과 같은 깃털을 나뭇가지에 매다는 일이다. 그의 작업에는 이 행위가 40여 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루디 : 그의 침실에는 옛날 그림들과 새의 깃털 장식이 걸려있다.

 

방문을 마치고 떠나던 날 아침은 내가 시금치 넣고 된장국을 끓여 김치와 함께 먹었다. 그동안 아껴가며 가지고 다니던 약간의 한국 양념을 그와 함께 소진했다. 처음으로 그의 옛날 그림들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침 시간이 금방 지나버렸다. 점심은 그가 소시지 넣은 계란찜과 스페인산 적포도주와 러시아 국수를 내주었다. 떠나는 내게 뭔가 자꾸 챙겨주는데 가방이 적어 사양하고 오래전 만든 얇은 도록과 얼마 전 인도여행 후 인쇄했다는 조그만 사진첩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모두 길에서 잠든 개사진 뿐이었다. 좀 의아해하는 나의 눈치를 보더니 “내가 개 잡는 놈이라서”라고 천연덕스럽게 해명했다. 아마도 인도의 팔자 좋은 개들을 보고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궁한 살림에 개들을 위한 앨범을 만들다니...
그는 뒤늦게 결혼하여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부인과 한 20년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는데 산에서 현장작업 중 부인의 지병이 발작하여 세상을 떴다고 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친구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부인 생각만 해도 달기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그에게 무어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기차역 플렛폼에서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있다가 기차에 올랐다. 슈트트가르트행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그도 걸음을 옮기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도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시그마링겐의 아홉개의 돌 : 도나우강 상류는 팔뚝만 한 송어가 유영할 만큼 수질이 좋았다. 강어귀에 평화를 기원하는 돌탑 하나 세우며 저 물속 고기처럼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