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셀리 2024. 4. 16. 13:50

쿵쾅쾅. 아침 일찍 문 두드리는 소리, 아버지다. "빨리 와봐. 엄마가 집채만 한 바위를 캐고 난리여......"
잠옷을 입은 채 달려가보니, 엄마는 정말로 바위 밑을 호미로 캐내고 계신다.
"엄마! 아니, 세상에 이 큰 바위를 어떻게 하시려고?"
"화단도 늘리고, 계단도 늘리려면 이걸 옮겨야 한다고......" 하신다.
89세 된 할머니가 하실 말씀은 아닌데도 나는 안다. 저걸 엄마는 옮기실 수 있다는 것을. 돌멩이 수준을 넘은 바위는 바닥을 파서 흔들흔들 움직일 정도가 될 때, 엄마는 끈으로 바위를 돌돌 감아서 손으로 들지 않고 굴려서 이동을 시키신다. 힘이 아닌 요령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으시니 큰 소리를 치시는 게다.

"동생이 곧 온다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같이 합시다."라고 해서 간신히 엄마를 구슬려 '바위 옮기는 일'은 일단 stop을 시킨 상태. 그러나 언제 또 발동이 걸리실지 모를 일이다.

비가 오는데도 엄마는 우산을 쓰고 정원에 서계신다. 우리 밭에도 와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가신다. 저리도 밖이 좋으실까? 저리도 일이 하고 싶으실까? 잠시도 쉬지 못하는 우리 엄마. 자고 일어나면 겨울 화단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자고 일어나면 감자 4 두둑이 심겨 있다.
늘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엄마에게 뜨개실을 사다 드렸건만, 봄이 되면서 엄마는 그 좋아하는 손뜨개도 손을 놓으셨다. 센터도 안 가고 일하시겠다고 해서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아침 일거리로 배추 모종을 사다 드렸더니 저녁나절 어둑어둑할 때까지 다 심어놓으신다. 엄마의 소일거리를 만드는 게 내 일인데, 엄마의 속도를 도통 따라갈 수 없으니, 이 또한 속 상할 일이다.

아침에 오던 비는 어느새 소강상태.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가 약비라서 산은 어느새 연두색을 꺼내 입었고 황매화도, 영산홍도, 앵두꽃까지 다글다글 꽃봉오리가 맺혔다.

비를 머금은 땅. "저 무른 땅을 정복하러 내가 가리라." 오늘 목표는 나무 이식이다. 작업복으로 환복하고 오늘은 삽을 들었다. 이미 계획했던 일이다. 땅이 무를 때라서, 작년에 심은 2m가 훌쩍 넘은 자두나무 하나를 몇 번의 삽질로 아랫밭으로 이식을 했다. 오, 어렵지 않네. 내친김에, 숙원 사업이던 사과나무도 오늘 옮겨버리자.
그런데, 흔들거리던 사과나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요리 당겨도 저리 당겨도 움직이지 않으니 여기서 멈추고 싶다. 앗, 이건 쉽지 않다. 50cm 남짓한 사과나무였지만 심은지 그새 4년. 좀 되었다고 뿌리가 제법 깊다.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삽으로 쿡쿡 깊이를 만들어 주었건만 고지가 코 앞인데도 깊은 뿌리 하나 때문에 나무가 빠지질 않는다. 이를 어쩐담? 주말에 남편솨 같이 할 것을...... 후회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도로 파묻기엔 너무 많이 진행한 상태다. 힘은 이미 고갈되었으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호미를 가져온다. 삽 대신 호미로 조곤조곤 파 들어가니 굵고 깊은 뿌리가 보인다. 마지막 힘을 다해 끌어내니 뿌리가 쑥 뽑혀 나왔다. 그 힘의 반작용으로 쿵,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아픔보다는 기쁨이 앞선다. 보무도 당당하게 한 손엔 사과나무를, 한 손엔 삽을 들고 아랫밭으로 달려간다.
푹~푹~, 구덩이 하나 거뜬히 파내어 사과나무 한 그루를 또 뚝딱 심어버렸다.

이게 뭐라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담? 이게 뭐라고, 어깨춤이 들썩이냐고?

엄마, 난 아무래도 엄마를 닮았나 봐. 아침에 일어나면 꽃과 나무를 보러 밖에 나가야 하고 겁도 없이, 심은지 4년 된 나무를 파내지를 않나. 자두나무 파낸 곳엔 명자꽃을 심고, 사과나무 파 낸 곳엔 또 운용매화를 옮겨 심었으니, 내가 힘없는 여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오전엔 조팝나무 꺾꽂이를, 오후엔 나무 4그루를 파내어 이식을 했으니 뿌듯한 하루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쓰는 일을 해놓고, '자랑할 데 없나' 좋다고 실실 웃고 있으니, 난 엄마를 똑 닮은 붕어빵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