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의 식빵
삼총사가 거의 한 달 만에 뭉쳤다. 생기 발랄한 윗집 동생 때문에 오랜만에 집안이 들썩들썩. 에너지 갑인 옥이가 2주 만에 내려와 우린 다시 뭉쳤다. 우리 집에서 식빵 굽는 실습이 있어서다. 언니는 참관자. 옥이가 선생님. 내가 학생이다. "유기농 밀가루 강력분 400g~450g, 이스트 7g, 설탕과 소금은 언니의 기호만큼....." 선생님의 지시대로 꼼꼼히 준비를 한다. "여기에 우유를 200ml를 섞어서 치대 주세요." 하는데 앗, 우유가 없다. 할 수 없이 우유 대신 물 한 컵을 넣고 치대는데, 반죽이 질은지 손에 쩍쩍 달라붙는다. "밀가루를 조금씩 더 넣어가면서 농도를 조절해 보세요." 선생님의 말대로 여기까지는 잘 진행을 했다. "자, 이제 볼에 랩을 씌워 숙성을 합니다." 하는데, 랩이 그릇 사이즈보다 작다. 아이고, 두 겹으로 해야겠네 하는데 그마저 랩도 이게 마지막이다. 간신히 볼에 랩을 씌웠으나 충분하지 않으니, 고무 밴드로 고정을 시켜주는데 밴드가 툭하고 끊어진다. 참관을 하던 윗집 언니가 "아이고..." 하면서 답답한지 자리를 뜨신다. "제 에어 프라이어엔 숙성 기능이 있는데...." 옥이네 있는 그 기능. "당연히 내 거엔 없지." 그러니 어쩌랴, 이가 없으니 선택한 잇몸은 전자레인지다. 유리컵에 물을 넣고 충분히 예열한 뒤에 숙성시키는 가난한 방법. 참, 애틋도 하다. 1시간 정도면 부풀어 오르는 반죽은 여러 번의 예열과 숙성의 과정을 거쳐 1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부풀어 올랐다.

1차 숙성된 반죽에 버터를 넣고 다시 조몰락조몰락 치대 준 다음, 예열한 전자레인지에서 2차 숙성을 했다. 이 번에도 수동 작업이다. 예열과 숙성, 예열과 숙성...... 그런데 전자레인지가 갑자기 '쾅' 하더니 작동이 멈췄다. "아이고 어쩌나, 유리컵이 깨졌구나."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유리컵은 다행히 멀쩡하다. 너무 긴 시간 예열하다가 그만 물이 끓어 넘쳐서 레인지 안이 물바다가 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아들이 한 마디 거든다. "엄마, 너무 고생하시네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사는 게 더 맛있을 텐데요."
아들아, 죄송하면 말하지 말지 그랬니?

파란만장? 한 과정을 거쳐서인지 반죽은 다행히 잘 부풀어 올랐다. 저울도 없고 변변한 도구가 없으니 손으로 적당히 삼등분을 해 성형을 했다. 눈 대중한 성형 반죽을 빵틀에 넣었더니, 크기가 '도 레 미'다. 도레미면 어떻고 도미솔이면 어떠랴. 숙성도 잘 되었으니 이제 잘 익혀주면 된다. 휴우, 이제 막바지다. 오븐이 없으니 이도 잇몸, 에어 프라이어에 넣어 굽는다. "170에서 13분이에요." 이것만큼은 자신이 있다. 이제야 편히 앉아 맛있어지기를 기다린다. 오후 3시 반부터 시작한 식빵 만들기. 식빵 한 덩이 만드는데 5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시간 다 되었다고 해서 꺼낸 식빵은 1% 또 부족했다. 겉은 그럴듯했으나 속은 덜 익은 상태.
우유 대신 물로 반죽을 하고, 숙성기계가 없어 유리컵을 깨트릴 뻔했으며, 오븐이 없어 에어 프라이어에서 두 번 구운 빵. 그러니, 맛없으면 반칙인 거다. 완성된 빵은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비주얼도 이른바 '겉바 속촉'. 그런데, 맛은? 아들이 한 입 베어물고는 애매한 웃음을 짓는다.
"맛 있다는 거니?"
"글쎄요."
암튼 좌충우돌, 크기도 제 각각인 '도 미 미' 식빵이 드디어 완성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