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고사리를 꺽다

요술공주 셀리 2024. 4. 30. 11:19

"내일 9시입니다." 우린, 어제 헤어지면서 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봄부터 벼르고 벼르던 모임은 '고사리' 꺾으러 가는 것.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일까? 새벽에 눈을 떴다. 뱀이 나오면 어쩌지? 산이 험하다던데 혹여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얼굴엔 sun block을 바르고, 등산화를 점검하고, 고무줄이 들어있는 바지를 골라 입고 장갑까지 챙겼다. 고사리는 '꺾는다' 했으니 다른 도구 없이 언니 집 앞에서 모였다. 오늘은 언니 집 뒷산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간다. 함께하는 member는 네 명이다.

선두에서 남자인 인0 씨가 lead를 하니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산 초입부터 가파르다.
"아이고, 힘들어."
"헉 헉" 고사리 꺾기 전에 모두 기진맥진. 나무지팡이를 만들어 등산부터 한다. 몇 개의 산소를 지나니 고사리가 보인다. 경험 있는 언니가 제일 먼저 수확을 하고,
"보인다."
"있다"
"난 안 보여" 등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나 나는 왜 고사리가 안 보이는 걸까? 가도 가도 산딸기 가시만 무성할 뿐. 고사리는 보이지 않는다. 날쌘돌이 부녀회장님이 참새 방앗간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산이다. 이미 꺾은 자리가 눈에 띄고 남아 있는 고사리는 이파리가 폈거나 너무 어린싹. 왕초보인 내 눈에 제대로 된 고사리가 보일리 없다.
 



그런데 그 때, 풀 숲사이에 쏙 튀어나온 고사리. 우와, 있다! 드디어 나도 하나 꺾었다. 통통하고 짤막한 키의 고사리는 생각보다 연했다. 연한 줄기 윗부분을 꺾으라 배웠는데, 그대로 해서 그럴 게다.
후후후, 한 개가 어려웠지, 눈에 익은 고사리를 연이어 꺾다보니 그새 예닐곱 개가 되었다. 슬금슬금 재미가 깊어간다. 재미가 붙을수록 산도 깊어지고, 얼굴까지 나뭇가지와 산딸기 가시가 위협을 한다. 쌓인 고사리는 겨우 여나무개. 산에 오른 지 30여분이 지났는데 수확이 영~, 신통치 않다.
 



"고사리 없어요. 내려가요." 경험 많은 언니가 그만 하산하자고 한다. 작년에 비해 나물이 귀한데다, 이미 나물 고수들이 다녀간 뒤라고 한다. 우린 가파른 산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우산나물과 취나물, 둥굴레와 잔대 등 봄나물이 지천이다. 그러나 내겐 다 무용지물. 여러 번 가르쳐줘도 도통 풀과 구별하기 힘들다.
"고사리 꺾어보니 사 먹는 나물이 비싸지 않네요. 생각보다 고사리 꺾는 일이 쉽지 않네요." 옥이의 말에 우리 모두는 무조건 찬성이라며 극한 동의를 한다.
 



"앗, 고사리다."
묘지 근처에서 발견한 고사리. 폈거나 너무 작았지만 그래도 평지이고 양지라서 그나마 눈에 잘 띄었다. 오늘 꺾은 양 중에 반 정도를 여기서 꺾었다. 휴대한 주머니의 반의 반도 못채운 양이지만, 그래도 수확한 양은 한 주먹 정도. 그나마 체면을 세웠다.

"이건, 엄나무, 이건 오가피, 이 아인 둥글레, 아 더덕도 있네." 언니의 눈에만 보이는 진귀한 산중 보물이다. 그 중에 산더덕 한 그루를 얻어왔다. 콩알만 한 더덕의 향이 온 산에 퍼질 만큼 강하다. 먹어보라고 캐 준 더덕이지만 넝쿨 타고 올라가라고 동쪽에 토닥토닥 심어주었다.

비록 한주먹 정도의 고사리지만, 내가 처음 꺾은 고사리다. 애들 오면 해주려고 소쿠리에서 말리기로 한다. 후후후 말리면 한젓가락은 먹을 수 있으려나?
한 주먹 고사리를 꺾었다고 그새 배가 고프다. 오늘 점심은 집 뒤꼍에서 꺾은 머윗잎쌈이다. 된장에 찍어 먹으니 쌉쌀한 쌈맛이 꿀 같이 달콤하다. 나른한 오후, 풍성한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