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또 고마운 날
마음이 바쁘니 먼 곳부터 들렀다. 9시에 open 한다는 한우 축협에 일착으로 도착했다. 미리 주문한 등심과 아들이 좋아하는 차돌박이를 샀다. 그런데 이건 또 뭔 일일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부터 꼬리곰탕거리가 50% sale을 한다고 하니, 또 충동구매를 한다. 횡성 한우는 맛이 일품인데, 가격도 만만치 않다. 어버이날이라고 아들네가 온다 해서 귀한 한우를 오랜만에 구매를 했다. 충동구매면 어떠리, 손주가 먹을 곰탕인 것을......
매년 이맘 때면 날아오는 청첩장이 책상 가득이었다. 나는 언제나 청첩장을 만들 수 있으려나, 돌릴 기회가 있기는 하려나? 노심초사했었는데 40이 되어서야 아들이 장가를 갔다. 게다가 남들 다 있는 손주도 생겼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손주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난 이미 정년을 했고, 그 친구들의 손주들은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많이 늦은 게다. 나는 13개월 된 손주가 있는 늦깎이 할머니다. 손주는 아들 그 이상이라더니, 난 한 달 전부터 5월 4일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지난 2월에 다녀간 손주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것이다.
꽃게를 주문해서 게젖을 만들어 놓고, 4월에 이미 손주의 여름옷을 택배로 시켰다. 저 이쁜 꽃들이 며느리가 올 때까지 피어 있어야 할 텐데 하던 꽃들은 이미 져버리고 화단엔 황매화와 옥매화, 문광이 피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5월이 어느 날 문 앞으로 훅 다가왔다.
오늘은 가족 모임 이틀 전. 아침부터 서둘러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깐 더덕은 고추장 양념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양갈비와 새우는 냉동고에, 엄나무순도 끓는 물에 데쳐놓았다. 토요일에 고추장 양념을 해서 나물을 무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부엌에서 서성이고 있다. 열무와 얼갈이를 사다 김치를 담그는데 반나절, 꼬리곰탕 거리를 준비하는데 또 반나절. 이제 음식 준비는 거의 다 된 것 같다. 토요일 저녁엔 바비큐를 할 거고 다음날 아침엔 곰탕이면 될 터이다. 그런데 점심엔 또 무얼 해줘야 하나? 머릿속에 담아 놓은 먹거리가 왠지 또 부족한 것 같아 메모지를 자꾸만 들여다본다.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일주일 전에도 물어보고, 어제도 물어보니 "엄마, 어버이날이라서 가는 겁니다. 음식은 저의가 준비할 거라서 엄마는 김치도 담그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알았어." 하면서 나는 또 부엌으로 간다.
후후후, 어버이날이라서 오는 아들네 때문에 내 마음은 벌써부터 축제다. 나에게 어버이날은 이미 시작되었고 음식은 뭘 할까? 뭔 이벤트를 하면 우리 모두가 즐거울까? 이 생각 저 생각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몸과 마음이 바쁘니, 기쁨도 덩달아 바쁘다. 기다림이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