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어쩌다 일상

요술공주 셀리 2024. 5. 6. 14:21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시장엘 가고, 마트와 정육점, 모종가게를 들렀었다. 연일 도착하는 택배를 풀어서 정리하고, 김치를 담고 꽃게를 손질했었다. 이불 빨래만 했겠는가. 손주의 이불과 아들이 덮을 이불을 햇볕에 널어놓고, 며느리가 좋아할 빨간색 꽃을 사다 심느라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4월이었는데, 언제 5월이 되었는지...... 
어제는 우렁찬 비, 오늘은 소리 없는 보슬비다. 강원도 산꼴짝엔 침묵과 적막도 함께 내리고 있다.

초록이 낯설고, 얼굴이 낯설고, 공간이 낯설다고 손주는 오자마자 울기부터 했었다. 그랬던 손주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에게 낯이 익을만할 때, 방긋방긋 웃을 때쯤 서울로 출발했다. 2개월 만인데도 손주는 몸무게도 늘고, 장난기도 늘고, 무엇보다 재롱이 많이 늘었다. 난 평소 호미를 들고 다녔으니 체력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1박 2일 안아줬다고, 여기저기 근육이 뭉치고 허리가 아프다. 손주를 하루 정도 안아줬을 뿐인데 세상 우스운 몸짓으로 걸어 다니게 될 줄이야......

즐겁고 화사한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부엌에서 서성이는 시간도, 손주와 놀던 시간도 그새 추억이 되었다. 넉넉히 준비한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남았다. 손주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와 아들의 중저음 목소리는 그새 귀에 아련하다. 남은 맛있는 음식을 볼 때마다 아, 또 1달을 기다리면 되지 되뇐다. 우린 6월에 양양에서 또 만나기로 했으니......

비 그친 틈에 오이를 심어야겠다. 연휴에 남편이 만들어준 럭셔리한 지지대가 빛을 발한다. 남편은 내년에도 오이를 심으라고 스테인리스 관으로 오이 지지대를 만들어주었다. 오이 3개, 참외 3개, 수박 3개를 심기엔 스테인리스 지지대가 좀 계면쩍다. 뭐 더 멋진 모종은 없는 걸까? 생각하다가 본능적으로 난 또 풀을 뽑는다. 그런데, 하필 뿌리가 깊고 길기로 소문난 억새를 캐내다가 그만 힘이 빠졌다. 난 늘 이 '충동 풀 뽑기', 무계획하고 무분별한 풀 뽑기가 문제다. 오이 모종만 심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억새 뿌리를 뜯어내다가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오늘도 계획에 없는 일.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풀 뽑기로 반나절을 버냈다. 호미로 시작하지만, 고난의 삽질보다 더 호된 작업량. 언제부턴가 그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초록이 짙어지면서 나의 '고난의 풀 뽑기'도 시작된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안 그래야지, 수 천 번 다짐을 해도 되지 않는 일. 그게 풀 뽑는 일이 될 줄이야......

점심을 먹고 남편은 또 출장지로 출발하고, 충분히 초록멍을 하다가 성당 반모임에 참석을 했다. 2년째 하는 반모임은 늘 배움이다. 어르신들은 늘 선생님이요, 인생의 선배이니 소소한 이야기가 내겐 일상의 양식이 된다.

부모님 저녁을 챙겨 드렸다. 아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드리니, 잘 잡수시는 부모님. 어젠 아들 덕분에 행복 했고, 오늘도 아들 덕분에 흐뭇한 효도를 했다.

조용히 날이 저물고 있다. 초록이 짙어지는 시간, 감사의 마음도 쌓여가는 시간이다. 가족들 모두 건강한 하루,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으니 감사의 마음도 쌓이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저녁 6시는 왜 늘 아쉽고 아련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