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똥손과 금손

요술공주 셀리 2024. 5. 15. 12:51

"언니. 아버지가 글쎄, 안방 블라인드를 또 망가뜨리셨네." 아버지는 똥손이다. 못도 못 박고, 전등이 고장 나도 엄마를 부르신다. 아버지 손이 닿으면 이상할 정도로 문도 망가지고 심지어 호미자루도 빠져버린다. 얼마 전 엄나무순을 따셨는데, 엄나무순과 함께 엄나무가 다 사라져 버렸다. 엄나무 순을 따려고 가지를 뚝 뚝 꺾어버리신 거다.
 



그런가 하면 엄마는 금손이다. 똥손인 아버지 덕분에 그리되셨는지, 원래 그렇게 타고나셨는지 모르겠으나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고 아름다움이 탄생을 한다. 모종을 심으면 그 모종조차 작품이 되고 꽃밭에 돌을 심으면 조경사 저리 가라 뺨치도록 잘 정돈된 정원을 만드신다. 통나무로 덩굴장미 아치를 만드셨고, 닭장도 직접 만드셨다. 엄마는 무거운 돌도 굴려서 옮기고, 쇠철망으로 오미자 철책을 만든 분이다. 남자들이 하는 힘든 일도 거뜬히 해치우는 엄마는 섬세함도 겸비했다. 손 끝이 야무져서, 어렸을 땐 딸의 한복을 직접 지어주시기도 했다. 엄마가 떠준 스웨터를 입고 등교했을 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극찬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치매로 많은 기억이 지워졌음에도 소파걸이와 커튼도 직접 떠서 달았는데, 엄마가 뜬 거라고 하면 사람들이 감탄을 연발하곤 한다. 
 

 

 



"엄마, 커텐 좀 떠주세요. 폭이 2m, 길이도 2m짜리 2 개 떠주셔야 해요." 일거리를 드렸더니 센터에서 퇴근하면 바늘부터 잡으신다. 엄마는 치매를 예방해서 좋고, 내겐 엄마의 작품이 생겨서 좋다.
"마음에 드냐?"고 물으시는데, "훌륭하다." 엄지 척을 해 드렸더니 씨익 웃으신다. 누구나 웃는 모습은 다 예쁘다지만, 아픈 엄마의 웃음은 늘 애잔하다. 걱정도 없고 가식도 없는 순수한 아기 같은 웃음. 그 웃음이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