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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대비

요술공주 셀리 2024. 6. 24. 14:28

엄마는 친정에 가거나 시댁에 가실 때면, 김치도 미리 담아놓고 국도 끓여 놓곤 하셨다. 난 어제부터 배추와 무를 뽑아 김치를 담고 있다. 집을 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을 지키기 위해서다. 장마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아직 본격적인 비는 오지 않으나, 제주도는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강원도도 다음 주쯤 북상한다고 하니, 윗집 옥이도 언니도 모두 바쁘다. 언니는 오이지를, 옥이는 이미 장마 대비 김치를 담갔다고 한다.

일을 하던 몇 년 전에는, 김치도 곰국도 나는 마트에서 구매했다. 시어머님이 계실 때엔 상상도 못 했던 일. 일을 했으니 바쁘기도 했고, 귀찮아서도 엄두를 못 냈었다. 사실은 배우지 못해서 할 줄을 몰랐던 거였다.
그런데 은퇴는 인생 2막이라더니, 은퇴 후의 생활이 180도로 달라졌다. 부모님의 주도하에 텃밭을 가꾸면서 어쩔 수 없이 김치를 담게 되었고, 농사지은 채소를 어쩌지 못해 저장음식을 배우게 되었다. 요리 고수들에게 잘 배워서, 이젠 제법 주부 티를 내고 있다.

텃밭에서 깻잎과 부추, 상추, 쑥갓과 오이를 따왔다. 금방 따서 씻은 채소가 제법 양이된다. 모든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간장과 액젓,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렸다. 설탕 한 스푼과 식초 한 방울도 잊지 않고 넣어주고 대충 버무렸는데, 심심한 청국장과 함께 먹으니 환상의 궁합이다.  



벌레가 먹어 숭숭 구멍 뚫린 배추를 절여 작은 통은 겉절이를, 큰 통엔 김치를 담았다. 배추 두 포기도 안 되는 양이지만, 못 생긴 배추는 다행히 달달한 맛이 났다. 게다가 유기농이지 않은가.
그런데 무는, 결국 한 조각만 남기고 버려야 했다. 깍두기를 담으려고 썰어보았지만 맵고 심이 박혀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으니, 꽃 피기 전에 뽑았어야 했다.

 
 



어린 양파 모종은 파와 모양을 구분하기 힘들었는데, 자라면서 하얀 알맹이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펑퍼짐해지더니 정말로 양파가 되었다. 양파를 직접 수확하다니, 이 또한 신기할 뿐이다. 오늘 담은 배추김치에 이 양파도 한몫을 했다.



넉넉히 뽑은 파와 양파, 부추, 깻잎과 오이, 상추, 양상추와 풋고추는 모두 신문지나 비닐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비어 있던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가 부자가 되었다.
글쎄다. 장마라고 마트에 못 갈리 없겠으나, 미리 채워놓으니 큰 일을 한 것처럼 든든하다.
양양에 다녀온 이후, 보리수에 꽂혀 바빠지기 시작해서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보리수청 만들고 김치 담그고, 풀도 뽑고......
휴~, 이제 장마가 온다 해도 걱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