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아카시아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비가 밤새도록 내렸고, 잠깐이지만 제법 센 돌풍이 불길래 아, 장마 스타트를 제대로 하는구나 했다.
어젠 비가 내렸지만, 오늘 아침 성당에 갈 때쯤 비가 그쳤다. 회색 비구름이 산 머리에서 주춤주춤 퇴장을 하는 모양새.
오늘은 교중미사 후, 전례부 교육이 있었다. 전례부 봉사자들에게 신부님이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다. 두부전골과 고등어조림, 각종 산나물 무침이 너무 맛있어 포식을 하고 집에 왔다.
가지런한 꽃밭. 백합과 우단동자, 수레국화가 얌전히 지지대와 함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대추나무와 보리수도 가벼워진 어깨를 한껏 곧추세우고 있다. 꽃 지고 웃자란 마가렡 꽃대를 잘라주길 참 잘했다. 넘어질 키 큰 줄기가 없으니 이 밭도 편안하다. 장대비가 내렸지만 잘 지나가 주었다.
그런데도 어젠 무척이나 바빴다. 오전 내내 뙤약볕에서 남편과 같이 오래된 뽕나무 2그루를 베어냈다. 진보라색 오디열매가 땅에 떨어져 신발에 붙고 길바닥이 온통 과즙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빗자루로 쓸어도 얼룩진 과즙 자국으로 늘 눈살을 삐푸리게 한다. 게다가 무성한 가지는 벚나무를 침범해서 제 몸 하나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불쌍한 벚나무. 한쪽으로 치우친 벚나무는 가느다란 줄기로 키만 큰 상태다. 위태위태한 벚나무를 구하려고, 오전 내내 뽕나무와 신나무를 자르느라 땀범벅이 되었다.

언제는 장마가 없었나? 해마다 여름이면 장마거늘, 난 왜 유난히 이 번 장마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지 모르겠다. 오전엔 나무를 자르고, 오후엔 비 오기 전에 4 두둑의 감자를 모두 캐냈다. 미리 캐서 지인과 동생에게 보내고 야금야금 쪄먹고 반찬을 해서 소비했더니, 남은 양은 양동이 4개가 전부다. 감자를 보관하고 양상추와 부추, 오이, 토마토를 수확해서 차곡차곡 냉장고에 보관을 하는데도 한참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제도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성당에서 귀가한 오후. 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갑자기 나온 햇볕을 따라 밭에 내려갔는데 어머나, 이를 어쩌나. 접시꽃은 두 팔을 벌린 채 한 쪽 가지가 누워있고, 모과나무 큰 가지가 뚝 잘려있다. 홍 아카시아 나무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땅바닥에 쓰러져 있으니,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람. 상상도 못 한 일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렇게 열심히 장마를 대비했는데......장마 시작 첫날에 나무가 부러지고, 쓰러지고. 도대체 비 때문일까? 바람 때문일까?

모과나무는 톱으로 가지를 잘라주었다. 키 큰 나뭇가지도 잘라주어 중심점을 낮춰줬으니, 별일 없을 게다.
그런데 아카시아가 문제다. 쓰러진 나무를 일으키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들을 불러 합동작전을 펼쳐 겨우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각목과 쇠파이프로 지지대를 세워주고 무게가 제법 나가는 이파리와 키 큰 가지를 정신없이 잘라주었더니 몇 가닥의 가지만 남았다. 아고, 너무 많이 잘라주었나? 덜컥 겁이 난다. 속성수라서 작년에 사다 심은 나무가 꽃도 많이 피고 키도 많이 자라 기특하다 했더니 이런 일이 생긴 거다. 자꾸만 장마에 보낸 바이오체리 생각이 나서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든다.
엄마가 붉은 꽃이 예쁘다고 볼 때마다 "무슨 꽃이냐?"라고 묻던 아카시아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 홍아카시아, "제발, 잘 버텨줘야 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