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강원도 작은 면소재지의 마트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보기 드문 풍경이다. 수레마다 장 본 물건들이 수북수북. 주말이기도 하지만 8월 첫째 주, 휴가철이라서 그런가 보다.
아이들은 어리고,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을 할 때, 우린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8월이면, 여름방학. 나도 아이들도 방학이지만 부모님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나는, 삼시 세 끼를 내 손으로 준비해야 했었다. 그러니, 난 휴가를 유난히 기다렸었다. 남편은 늘 8월 첫째 주에 휴가를 잡았는데, 휴가지는 대부분 서울과 가까운 강원도였다. 설악산과 백담계곡, 양양과 속초의 바닷가가 주된 휴가지였다.
더러는 동생네와, 대부분은 남편 회사의 동료와 함께 휴가를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휴가는 아름다운 추억이요. 다시 가고픈 시간 여행이다.
남편은 어제 경상도 출장에서 돌아왔다. "강원도가 좋아. 더워도 여기는 견딜만해."
다음 주부터 휴가라면서 남편은 들뜬 목소리였다. 밤늦게까지 올림픽을 즐기고 여유 넘치는 시간을 늘어지게 보내던 남편은 오늘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어휴, 더워. 이럴 땐 일하면서 땀을 내야 해." 하면서 긴팔과 바지를 챙겨 입고 성큼성큼 동생네 집으로 향한다.
동생이 중국에 간지, 세 달째. 제부는 출국하기 전에 깔끔하게 잔디를 다듬었는데, 동생 집은 긴 장마에 잡초 가득한 정글이 되었다. 그 정글을 보다 못해 엊그제부터 엄마는 가위로 풀을 깎으셨다. 해가 지면 엄마는 가위를 들고 나오셨지만 잔디, 아니 정글의 10분의 1도 깎지 못하셨다. 남편이 이를 보고 서둘러 작업을 시작한 시간은 오후 세시가 넘어서다. 옆에 서서 응원을 하는 내 얼굴에 땀이 범벅이니, 작업을 하는 남편의 얼굴에선 비 오듯 땀이 뚝뚝 떨어진다. 정글엔 풀이 범벅, 하늘엔 찜통이 지글지글, 남편의 옷이 땀으로 살에 찰싹 달라붙었다. 풀 길이가 길어서 기계도 헉헉거리고, 잘 깎이지 않으니 평소보다 작업 시간도 두 배가 더 걸렸다.
잔디를 깎았을 뿐인데,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법했던 집이 이제야 전원주택 같다. 이제야 꽃이 보이고, 아치도 눈에 들어온다. 깔끔한 공기 사이로 상큼한 풀 내음이 살랑인다. 동생이 좋아하던 풀냄새가 진동을 한다. "장모님이 좋아하시겠네." 남편이 잔디기계를 정리하며 툭 던지는 말. 그 말속에 장모님과 처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 나온다.
지난봄에 따서 냉동고에서 얼려놓은 딸기를 꺼내어 스무디를 만들었다. 달달한 딸기잼은 내 마음. 이 더위에 처제 집의 잔디를 깎아준 남편이 고맙다. "자기야, 고생했어." 고생한 남편에게 오늘 저녁엔 뭘 먹고 싶냐 물으니 "고소한 소고기와 시원한 맥주"를 주문한다.
"어, 시원해."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남편이 환하게 웃는다. 노동 후의 힐링이란다. 땀을 흘린 대가는 달콤한 휴식. 휴가가 뭐 별거냐면서 "암튼, 우리 휴가는 올해도 강원도네." 하는데, 허허허 틀린 말이 아니다.
쨍하고 부딪는 맥주잔에 선선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우린, 이제부터 진정한 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