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제철 아닌 꽃도 있더라

요술공주 셀리 2024. 8. 5. 11:35

부모님은 오늘도 노치원에 가셨다.
더위를 잘 참으시는 건지, 문단속이 철저하신 건지 방문과 현관, 거실문까지 늘 꽁꽁 닫고 다니시는 부모님이 어쩐 일로 창문까지 다 열어놓고 나가셨다. 이 불볕더위는 부모님의 문단속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역시 대단한 더위다.

꽁꽁 닫은 문을 환기시키려고 난 매일 아침, 부모님 집으로 출근을 한다. 식탁 위의 커피가루도 치우고, 돌려놓고 잊고 가신 세탁기의 빨래도 햇볕에 널어놓는다. 엊저녁 포도를 갖다 드렸는데 포도 껍질은 식탁 위에 그대로 있다. 부엌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 내 눈을 사로잡는 꽃이 있었으니, 능소화다. 봄에 피는 꽃 능소화가 설마, 이 여름에? 이럴 수는 없는 일.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일이 생긴 것이다. 아랫밭에서 능소화 줄기 하나가 돌담을 타고 올라와 꽃을 피운 게다. 생명력 강한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일 줄......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봄꽃의 대명사 '삼색 제비꽃'도 보인다! 제비꽃 한 그루가 더위에 지쳐 땅에 포복해서 작고 가늘게 버티고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이 번엔 '애기똥풀'이다. 역시 헉헉거리며 간신히 피어 있다.

 


이른 봄에 1달여 어깨 뿜뿜하던 황매화까지 이 여름에......

 


이 '머선 일'인가? 이상 기온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지구를 지켜라!' 인간들에게 시위라도 하는 걸까? 병꽃까지 시위대에 합류를 했다.

 


그럼 그렇지. 봄에 나타났지만, 결실을 위해 쑥갓꽃이 환하게 만발했다. 그래야지. 쑥갓처럼 제철을 알아야 하는 건데...

 


엄마가 씨앗을 뿌린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키가 자랐다. 3m 더 넘는 키를 자랑한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씨앗이 저렇게 큰 키를 키웠을까?

 


여름 제철꽃이 제대로 만발했다. 연분홍이던 섬색시꽃은 진분홍으로 성장을 하고

 


달개비꽃도 파랑 잉크를 흠뻑 머금었다.

 


나팔꽃이 육상선수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출발선에서 만개를 준비하고 있다.

 


금메달 따겠다고 분꽃도 에너지 충천!

 


엄마가 손톱에 물들이겠다고 기다리는 봉선화도 드디어 활짝 만개했다.

 


꽃과 줄기가 만나지 못해 늘 기다림으로 애처롭기 그지없는 상사화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런가 하면 가을이 되기도 전에 미리 나온 성질 급한 녀석들도 있는데, 코스모스와 벌개미취...


 


제 멋대로인 듯하나 기다림도 알고, 인내와 순리도 아는 꽃들이다.
꽃을,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자연의 신비 앞에서 그래서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봄, 여름, 가을이 합창을 하는 내 집 정원.
작열하는 태양아래, 더위를 비집고 살금살금 가을이 준비를 하고 있다. 말복보다 입추가 먼저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