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제법이다. 너..
이른 아침부터 스멀스멀 안개다. 뽀얀 안개 뒤에 숨은 저 더위는 오늘은 또 얼마나 극성일까? 더위를 품은 안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강렬한 저 불볕더위엔 감히 나갈 수가 없다. 모든 일은 해가 없는 아침 아니면 저녁에 해야 한다. 그런데 늦게 일어난 아침이 많아 요즘은 이런저런 일을 못한 지 오래다. 저녁엔 모기 때문에 일을 못하고......
오후 4시. 그늘이 지는 동쪽 데크에 나갔다가 자석처럼 풀 앞으로 직진을 한다. 호미 없이 맨 손으로 요리조리 풀을 뽑는데, 오랜만의 일이어서 재미가 난다. 그런데 10여분 지났을까? 무릎과 팔 여기저기가 따끔따끔. 모기다! 화들짝 놀라 장갑을 팽개치고 집에 들어와 보니 뜯긴 곳이 와락와락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짜식. 제법이네. 오랜만이라고 격하게도 물었네." 약통에서 알코올솜을 꺼내 박박 문질러주었다. 모기쯤이야~~, '버물리'보다 더 강력한 상비약, 내겐 'save'가 있다. 알코올 성분인 save를 바르고 10여분이면 가려운 증상도 흔적도 싸악 사라져 버린다.


이제, 텃밭을 둘러볼 차례. 오이와 가지, 토마토를 수확한다. 하룻볕에 어제와 다른 크기, 어제와 다른 빛깔의 작물들이 대기하고 있다. 어제는 없던 붉은 토마토가 세 개. 설마, 내일 또? 기대하지 않는데, 다음 날에도 딸 것이 또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강렬한 자태. 아니, 벌써? 고추가 익다니...... 한 뼘이나 되는 고추가 빨갛게 익고 있는 게 아닌가? 입추 지나고 오늘이 말복이라더니, 이 아이들도 자연의 신비를 알고 있음이렸다.
아이고, 세상에 포도 한 송이가 제법 그럴듯하지 않나? 작년엔 포도 알갱이를 따서 먹었는데 오늘은 전지가위로 줄기를 잘라온 캠벨 포도. 흐르는 물에 씻어 한 입 물었는데, 육즙이 팡! 입안 가득 단맛이다. 마트에서 산 포도맛이라니 어머, 너 제법이다.

어떤 이유일까? 작년엔 모양도, 크기도, 맛도 죄 부족했더랬는데 내가 제법 능숙해진 탓일까? 아님, 날씨? 아니면 거름? 작년엔 가지도 꼬부랑 할머니, 오이도 꼬부랑 할아버지였다. 크기와 굵기도 제 각각인 데다 허리가 굽었던 채소였었다. 그런데 올 수확은 오이도 길쭉, 가지도 길쭉. 심지어 수박과 참외가 제 맛을 내주니 재미는 재미대로, 어깨는 어깨대로 뿜뿜이다.
강원도에 3년 살더니, "오, 이제 제법이다. 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