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피 옆에 더 맛 있는 거
"언니, 아무래도 추석에 못 갈 것 같아." 이건 또 웬 귀신 신다락 까먹는 소리? 추석만 기다리고 있는 내게 중국 동생이 전화를 했다.
동생이 강원도에 집을 짓고는 "우리, 나중에 은퇴하면 여기서 같이 살자" 해놓고 동생은 내가 이사를 하자마자 남편 따라 중국에 가버렸다. 처음 3년은 제부만 가 있었는데, 3년 더 연장됐다고 하면서 동생도 함께 떠났다. 동생말을 듣고 강원도에 집을 짓고 이사 온 난,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귀국해서 1달여 머물다 가는 동생. 난, 이제나 저제나 동생과 함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10개만 하려던 오이지도 50개나 담가놓고, 청국장도 넉넉히 주문해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동생이 추석에 오면 해주려고 다 계획을 했던 일인데, 못 온다는 연락이 이렇게 화가 날 일인가? 폭발 직전의 감정이 동생에게 날아갈 무렵, 다시 전화가 왔다. "회사 일정이 바뀌어 추석에 한국에 갈 거야." 그래? 그럼 애들도 오겠네?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가 말의 빠르기도 빛의 속도다. 이 번 추석엔 동생네와 조카 가족, 내 아들 손주가 다 모이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또 이렇게 설렌다.
난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일을 핑계로 배울 시간이 없었다고 하나, 사실은 배울 생각이 없었다는 쪽에 한 표 더 줘야 할 게다. 요리학원을 다닌 동생은 요리를 곧 잘 해낸다. 양장피와 다양한 국수 요리, 김치찜과 특화된 고기 요리가 주 특기인 동생에게 유일하게 배운 요리가 '양장피'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지만,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가끔 만드는 양장피를 지난 주말에 남편에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요리는 '앙꼬 없는 찐빵', 양장피 없는 양장피였다. 제 철 채소만 채 썰어서 새우만 넣고 소스만 제대로 만들었을 뿐인데도 남편은 맛있다고 해주었다. "양장피 없어도 맛있네. 그런데 오징어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야." 아쉬움을 토로하는 남편의 평가에 힘입어 오늘은 마트에서 오징어와 새우를 사 왔다.
이 더위에 건진국수를 해 준 옥이와 늘 살뜰히 챙겨주는 헤레나 언니에게 나눔을 하기 위해서다.
흰색, 녹색, 주황색, 빨강과 보라색의 채소를 채 썰고, 분홍 새우와 오징어를 삶았다. 평소라면 접시에 색색으로 돌려 세팅했을 텐데 오늘은 모든 재료를 간편하게 섞기로 한다. 양장피도 아니요, 팔보채도 아닌 '퓨전 특선 요리'가 완성 되었다. 여기에 나만의 '특제 소스'를 곁들이면 되는데 짭쪼롬, 매콤, 달콤, 새콤한 소스가 헤레나 언니와 옥이의 입맛을 찾게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동생이 좋아하는 오이지무침, 제부가 좋아하는 꽃게장 무침. 아림, 아정이 좋아하는 곰국 재료인 꼬리까지 다 준비해 놓았다.
오늘 축협에 가서 꼬리 11kg을 사 왔다. 마침 sale 기간이어서 양지 국거리까지 사 왔으니 난, 추석 준비 완료! 이제 추석만 오면 된다.
동생이 오고, 가족이 모이는 추석이 한 달 전이다.
요리를 미리 준비하는 이유가 있다. 명절에 누릴 기쁨과 설렘을 미리미리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 기쁨과 설렘을 한 달씩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