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봉숭아꽃 손톱

요술공주 셀리 2024. 8. 21. 15:50

"너의 집에 봉숭아꽃 폈더라."
동생과 통화하면서 근황을 말해줬더니,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나온 애들이야."라고 한다. 동생 집엔, 저절로 나온 애들 봉숭아꽃이 한창이다.

꽃밭이 있는 시골집에 살 때, 엄마는 여름이 되면 열손가락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이곤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도 봉숭아 손톱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우리 자매의 손톱에 꽃물을 들여주셨었다. 코딱지만 한 새끼손톱에 꽃을 올리고 비닐을 씌워 신문지로 덮어주셨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답답했던 봉지를 풀러 내면 통통 불어 주름 잡힌 손가락이 먼저 보여 울상을 하곤 했었다. "엄마, 내 손톱에서 피가 나"라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도 우리도 봉숭아꽃 닮은 빨간 손톱으로 여름을 나곤 했었는데......



오늘도 노치원 가신 부모님의 뒷정리를 하러 동생집으로 출근한다. 꽁꽁 닫아놓은 거실문과 창문을 죄 열어놓고 집을 나오려는데, 따르륵따르륵 기계음이 들린다. 세탁기다. 엄마는 하필 비 오는 날 빨래를 하신대 하며 빨래를 널고, 선풍기로 바람을 날려 보낸다. 빨래가 잘 말라야 할 텐데......

부슬부슬 비를 맞으며 봉숭아꽃잎을 따다가, 넌 또 하필 비 오는 날 꽃을 따는 거야 한다. 후후후, 모전여전.
무턱대고 꽃을 따왔으나 손톱에 꽃물을 들이려면 백반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다. 이를 어쩐다? 할 수 없지, 그냥 소금만 넣고 할 수밖에.
이른 저녁을 먹고, 일치감치 세수까지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봉숭아 물들이기를 시작한다. 방망이로 꽃잎을 콩콩 찧어 꽃물이 뚝뚝 떨어지는 꽃덩어리를 손톱 위에 올려놓고 랩으로 둘둘 감아주면 완성이다.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다. 어? 이렇게 쉽단 말이야? 옛날엔 비닐을 잘라서 꽃 위에 이불처럼 씌어주고, 신문지로 덮어 실로 감아주는 복잡한 과정이었는데?......



문명의 이기는 참 편리하다. 랩으로 감아 한 방에 끝낸 봉숭아꽃 물들이기. 이제, 몇 시간이면 손톱에 꽃물이 앉혀질 게다. 어떤 색으로 나올까? 보라색꽃이었으니 보라색으로 나오려나? 여러겹 칭칭 감은 랩 사이로 꽃향기가 퍼져나온다. 꽃향기에 취해 기다리는 이 시간. 난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시골의 참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