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하루
나는 3년째 백수다. 정확히 말하면 주부 3년째. 흰 띠에서 노랑띠를 겨우 받아낸 초보 주부다. 그런데 24시간이 부족하다. 요 며칠이 그렇다는 예기다. 날마다 고추가 열리고, 날마다 가지가 열리면서 그렇게 됐다. 어제도 오늘도 시작은 분명 배추와 화초의 '물 주기'였는데, 마무리는 늘 풀 뽑기로 끝난다.
모기는 늘 보너스로 물리고......
어젠 가지와 한판을 했고, 오늘은 아침부터 고추와 대판을 했다. 가지를 빨래처럼 말려서 겨울에 가지나물을 하려던 것을 '가지차'로 계획을 바꿨다. 동생이 보내준 유튜브 덕분이다. 덜 마른 가지를 에어프라이에서 1차 건조를 시킨 후, 프라이팬에서 덖어주었다. 왜 덖어주는지 이유를 알았다. 굵기가 다른 가지가 균등하게 건조될 리 없으니 약불에서 덖어주고, 햇볕에서 말려줘야 한다는 게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러니 체험이 중요한 것이다. 가지차의 여정은 이제 시작. 몇 번을 더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이젠 고추 차례. 우연히 박교장님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한 수 배운 방법으로 '청양고추 청'을 만들기로 했다. 그냥 썰어서 설탕에 재우면 되는데, 설탕을 넉넉히 채워주라고 했다. 박교장님은 동료일 때도 '도움 주는 이'였는데, 농사도 주부도 한 수 위다.

일찍 일어난 새가 더 얻을 게 있다더니, 일찍 일어난 사람은 더 바쁘기만 하다. 물 주고, 풀 뽑고, 가지와 고추를 마무리할 때쯤, 아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이젠 옷장 정리다. 신박한 비닐과 청소기로 이불의 부피를 줄여서 이불장을 정리했다. 넘쳐나던 이불장이 넉넉해졌다.

어느새 12시다. 배꼽시계가 김밥을 주문한다. 그 정도쯤이야 뭐 껌이지 하며, 김밥 세줄을 뚝딱 만들어 먹었다.
이젠 두툼한 겨울옷을 정리한다. 매직 비닐로 공기를 빼내니 겨울의 부피가 60%나 줄었다. 정리가 재미있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 좀 쉬어야겠다.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달려온 집안일.
아, 아들이 쉬는 틈새에 저녁에 먹을 삼계탕을 또 미리 만들어 놓았다. 종종걸음으로 하루 종일 움직였다. 노곤노곤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재미가 있다. 처음 해보는 매직 비닐 덕분이다. 세상 일도 이렇게 매직이면 좋으련만, 공기가 거품처럼 빠지니 말이다.
오후는 그럭저럭 잘 넘어간다. 이제 부모님 오실 시간에 포도를 씻어 갖다 드리면 오늘 하루도 평화로다. 감사한 하루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