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부엌에서 하루를

요술공주 셀리 2024. 9. 13. 22:14

맛있게 생긴 열무가 하룻밤 사이에 녹아버렸다. 누가 이럴 줄 았았나? 비 맞을까 봐 비닐봉지에 담아둔 게 화근이었다. 30%는 버리고 나머지만 건졌다. 얼갈이배추와 같이 다듬고, 씻고, 절여서 김치를 담그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김치를 버무렸던 그릇을 수돗가에서 씻고 있을 때, 카톡이 왔다. "언니, 나 출발." 아, 드디어 동생이 여기 온단다.

카톡. 이 번엔 택배다. 주문한 냉동꽃게가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왔다. 냉동된 상태가 충청도에서 오느라, 이미 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를 어쩐다? 김치 담느라 오전에 이미 진이 빠진 상태다. 게다가 동생 부부에게 저녁을 해주기로 했으니 우왕, 시간이 필요하다. 꽃게는 내일 하고 싶은데, 해동을 시작했으니 이를 어찌할꼬?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0마리나 되는 숫게를 씻어달라 했다. 씻는 방법을 설명해 주니, 아들은 꼼꼼하게 잘도 씻는다. 게딱지와 배꼽을 떼어낸 몸통을 반으로 자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어 간장베이스로 고춧가루와 풋고추, 마늘, 생강 등을 섞어 버무리면 친정 엄마표 게젓이 완성된다. 이웃 언니에게 선물 받은 맛간장을 듬뿍 넣어줬으니 맛있을 게다.
그런데 씻고, 자르고, 버무리는 데 걸린 시간만 2~3시간. 큰 통, 중간통, 작은 통에 소분해서 냉장고에 정리하고 나니 5시다. 앗. 저녁준비를 해야 한다. 제부가 좋아하는 코다리찜과 동생이 좋아하는 오이지무침, 어제 만든 동그랑땡을 준비했다. 동생 부부는 정확히 6시에 왔다. 치과에서 발치하느라 점심도 못 먹은 부부는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동생은 3개월 반 동안 비운 방과 집 안을 정리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난 가족맞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하루종일 부엌에서 종종거렸다. 어제도, 그제도 일 일. 내일은 동생과 룰루랄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