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이사 준비

요술공주 셀리 2024. 9. 18. 12:37

"언니는 참 이상해. 왜 내 말을 안 들어서 이 고생을 해......."
"엄마, 그러니까 처음부터 좀 크게 했어야죠."
"어휴, 참 잘 생각했네요."
부엌을 늘리겠다고 말했을 때, 동생과 아들은 처음부터 잘 계획했어야 했다고 타박부터 했다. 이웃만이 좋은 생각이라고 응원을 해줬다.

집을 지을 때, 남편과 나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 일을 할 때라서 공사는 모두 시공사에게 맡겨 하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내려오면 방 하나가 뚝딱 생겨나고, 2층이 또 지어지곤 했으니 맘에 들지 않는 곳이 있어도 쉽게 수정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집은 정년 후에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땅을 사고 나니,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예산도 없이 덜컥 시작을 했던 것이다. 말을 타고 보니, 종 부리고 싶다는 옛말이 딱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냥 주말주택으로 사용해야지 했던 집이다. 그래서 작게 지었는데, 이렇게 이사까지 와서 정착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내 집은 넓은 잔디밭과 좋은 경관 등 장점이 더 많은 집이지만 좁은 거실, 좁은 방, 좁은 계단과 문턱이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 창문이 없어 환기가 되지 않고 보일러실이 막고 있어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부엌인데 고칠까, 이사 갈까, 갈등과 고심이 많았으나 결국 이 번에 손을 보기로 했다. 작은 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보일러실을 옮기고, 현관까지 부엌을 넓히기로 했다. 무엇보다 부엌에 창문을 설치해 환기와 채광을 해결하고자 했다.

동생부부가 13일에 강원도에 왔다. 호호하하 함께 지내다 보니 추석이 왔고, 아들네와 손주랑 보낸 시간이 꿈결처럼 후딱 지나가버렸다. 쓰나미 왔다간 것처럼 진한 여운과 함께 피곤도 몰려왔다. 마음이 먼저 앞서는데 몸이 영 따라와 주지 않는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나니, 힘이 솟는다.
추석 음식을 정리하다가 그릇을 정리하고 그릇 정리하는 김에 부엌정리도 시작하게 되었다. 부엌공사를 위해 살림살이를 잠시 이사시켜야겠기에 시작한 일이다.

부엌 증축은 싱크대를 넓힌다는 뜻이다. 보일러실만큼 부엌이 넓어지니, 그만큼 싱크대도 자동 커진다는 것. 그리하여 작업의 첫 단추는 싱크대를 비우는 것이다. 그릇과 냄비, 프라이팬을 박스에 담아 별채의 방으로 피난을 보내야 하는데, 우왕 이 작업 또한 만만치 않다. 꼭 이삿짐을 싸는 모양새다. 그릇 하나하나 뽁뽁이를 잘라 싸주고 박스에 담아 옮기는데, 두 사람 사는 집에 이렇게 많은 부엌살림이 있었다니, 새삼 놀랍다. 살림살이를 꺼내 놓으니 산더미다. 오늘은 그릇만 정리하기로 한다.

시간도 걸리는 작업. 잔손이 많이 가는 작업.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인데도 생각도, 마음도 기쁨이고 설렘이다. 왜냐하면 설거지를 하면서 창밖 풍경을 볼 상상이면 힘듦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으니까.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사계절 갈아입는 나뭇잎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후드득후드득 여름 소나기에 피어나는 구수한 흙냄새를 맡아볼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흐뭇한 상상으로 시간 가는 줄, 저녁이 오는 줄, 밤이 온 줄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