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젊은이
은퇴하기 전엔 난 뒷방 늙은이였다. 모임에서도 연장자, 직장에서도 제일 나이가 많았다. 가능하면 나서지 않고 가만히 지내려고 노력하던 때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어른 대접이 자연스러워질 때 은퇴를 했다. 2월 28일 퇴직을 하고, 3월 1일에 시골로 내려왔다.
출근을 하면 언제나 만날 수 있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선 만나기 힘든 귀한 사람이 되었다. 여긴 노인들의 천국이다. 월요일도 휴일, 주말도 휴일이 익숙해질 때 알아진 새로운 사실은, 내가 '노인국'의 청년이 되었다는 것. 성당에서도 난 청년이고, 병원에 가도 미장원에 가도 난 젊은이로 불렸다. 감투도 내려놓고 직업도 다 내려놓고 내려왔는데, 젊은 일꾼이 왔다고 성당에서 맡은 일만 두세 개. 흰머리칼 개수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젊은이라니, 어딜 가도 어린 사람 취급이어서 반은 좋아서 웃음, 반은 어색하고 황당했다.
남편의 백내장 수술 때문에 거의 매일을 안과에 갔다. 이른 아침에 가도, 낮에 가도 환자들의 90% 이상이 노인들이다. 하긴, 젊은 친구들이 이 시간에 안과에 온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은 일터에 있을 테니까. 딱히 특별한 직업이 없는 노인들이기에 출근 타임에 병원에 왔겠지만, 속사정은 퇴화된 기능과 삐걱거리는 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일 터. 눈이라고 멀쩡할리 없다. "나이 들어 그렇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이거, 지금 투약하는 거 맞아?"
"이거, 지금 먹어?"
눈에 넣어야 할 안약의 종류만도 서너 가지, 먹는 약과 주의사항까지 복잡하고 많아서 나도 헛갈릴 것 같은 상황이지만, 남편이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한 적도 처음인 것 같다. 2시간마다 투약해야 할 안약. 식후 먹는 항생제. 하루 두 번 투약하는 또 다른 안약. 꼼꼼하고 섬세한 남편이, 힘든 일을 척척 해결해 주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도와달라, 챙겨달라 하고 있으니 환자라서 그런 건지 세월이 앉은 탓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엄마를 챙기는 아들의 마음도 달라졌다. 결혼을 하더니, 봉투에 용돈을 넣어주고, 전화도 영상통화도 많아졌다. 그런 일들은 얼마 전까지 내가 하던 일이었는데......
아들과 손주를 챙기는 나도 달라졌다.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한국의 여늬 엄마 대열에 가뿐하게 합류했기 때문이다. 명절을 기다리고 생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아직은 두둑한 세뱃돈을 줄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인터넷을 곁에 두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다. 아무나 못하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도 되었다. 그러나, 9988까지는 30년도 더 남았다. 그러니 새로운 꿈도, 새로운 일도, 새 직업도 생겨난 게 아닌가? 내 꿈은 화가요. 직업은 지공거사에 이어 호미도사.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를 유난히 즐겨입는 나. 오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