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아이를 둘이나 출산한 여자다. 둘 다 자연분만했으니 까짓 채혈쯤이야......
위내시경은 좀 거시기하지만 그도 못할 리 없다. 뭔들, 산통만 하겠냐고......
"휴일 뒤엔 사람이 많으니, 10시쯤 오시면 좋겠네요." 문진표를 미리 가지러 어제 병원에 갔을 때, 주의사항과 함께 친절하게 안내해 준 직원의 인상이 참 좋았다.
남편에게만 아침을 차려주고 작성한 문진표를 들고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딱 10시. 역시 휴일 뒷날은 사람이 예상보다 많다.
혈압을 쟀는데 평소보다 좀 높게 나온다. 다시 측정한다고 했더니 "괜찮아. 긴장해서 높게 나온 거야. 150까진 위 내시경할 수 있어." 미리 검진한 남편의 조언이 위로가 된다.
그런데, 왜 이리 추운 거지? 손도 시리고 온몸이 오슬오슬 떨린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가 설마? 건강검진 때문? 그로 인한 스트레스? 에이 그럴 리가......
시력검사, 청력과 비만도 측정, 심전도검사와 채혈 등 호명되는 대로, 순서대로 진행하면 되는 게 건강검진이다. 일반환자들과 섞여서 의자에서 대기하자니, 처음 온 병원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시내에서 제법 먼 곳에 위치한 병원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어딘가 불편해서 온 사람들이니, 표정이 밝을 리 없다. 무덤덤한 사람들. 긴장과 근심이 묻어있는 병원은 이래도 저래도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11시 30분. 병원에 머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 위내시경만 하면 되는데, 대기자가 많다. 점심시간도 가까워오는데 그냥 일반내시경으로 변경할까?
30여 년 전. 서대문의 보건소에서 처음으로 위내시경을 했었다. "숨을 잠깐 멈추고, 자 이제 좀 불편합니다. 숨 쉬세요....." 여자 의사의 주문대로 했더니 편안하게 일반 내시경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위내시경은 늘 수면이 아닌 일반으로 진행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헛구역질이 나고 매우 불편한 경험을 했고 그 이후엔, 위내시경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혈압이 150 넘게 올라갔었다. 결국 위내시경은 지난번부터 수면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내 집인줄 착각할 만큼 편히 잘 자고 눈을 떴는데, 여긴 병원이었다. 아, 그렇지. 위내시경이 끝났구나라고 정신을 차렸을 때, "ㅇㅇㅇ님, 보호자랑 같이 들어오세요." 호명을 한다. 검진 결과는, 약간의 염증이 있으나 괜찮다고......
병원 근처의 식당에서 뜨근한 설렁탕을 시켰다. 아침을 굶었으니 맛없을 리 없다. 휴~ 이제, 2년은 편히 지낼 수 있겠군. 점심을 충분히 먹었는데도, 집에 돌아오니 마구 식욕이 당긴다. 포도 한 송이, 땅콩 한주먹을 먹어서일까? 잠이 쏟아진다.
"긴장했었나 봐. 뭔 낮잠을 그리 오래 자." 남편의 잔소리에 시계를 보니 5시다. 세상에 낮잠을 세 시간이나?
언제부터 그렇게 나약해진 거야? 나름, 멘털 강자라 자부했었는데. 그 멘털로 백내장 수술, 할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