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발
"엄마, 태어나서 이렇게 큰 고구마는 처음 봤어요. 어쩌면 이렇게 농사를 잘 지으셨어요? 아들과 함께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 농사는 사실은 실패다. 나도 아들처럼 알이 크고 굵으면 잘 지은 농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애기 머리통만 한 고구마는 맛없기로 일등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엊그제 캔 고구마는 대부분 어른 주먹보다 큰 사이즈였다. 고구마는 작고 예쁜 게 맛이 있단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밭에서 부모님은 작업 삼매경이다. 포도를 씻어 갖다 드리려고 간 엄마집은 고구마 줄기가 야외 식탁을 덮어버렸다.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다. 부모님은 고구마 순 다섯 양동이를 다듬어놓으셨다.
이럴까봐, 우리 집 후미진 곳에 줄기를 잘 숨겨놨었는데, 언제 엄마집에 저걸 다 가져가서 저러고 계신 걸까?
"엄마, 저 많은 고구마줄기로 뭐 하시게요?" 했더니, "삶아서 말리려고." 하신다. 세상에 저 많은걸...... 이를 어쩐다? 작년에 말려놓은 줄거리가 아직도 냉동실에 있는데 저걸 또 어떡한다? 재빨리 머리를 회전해 본다.
한 양동이를 덜어 "엄마, 이만큼은 김치 담게 껍질만 까주세요." 했더니 엄마는 일방석을 끌어다 앉아 껍질을 벗기신다. 아버진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고......
"호박, 그만 다 걷을까?" 아버지가 또 일을 재촉하시길래 "아뇨. 더 자랄 호박이 있으니 다음 주에 걷지요." 했는데도 덜 자란 호박과, 늙은 호박 하려고 따지 않은 커다란 호박까지 죄 따다 놓으셨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 호박은 엄마가 따신 것 같다. 저렇게 가지런히 놓은 걸 보면......

비 온다는 핑계로 오늘은 푹 쉬려고 한 계획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불 때는 아버지 살피랴, 양이 많다고 함께 까자는 엄마 도와드리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김치 담을 준비하느라 틈틈이 부엌을 오가다 보니 비 오는 날, 제대로 날궂이를 했다.

그나저나, 예정에 없던 고구마줄기 김치를 담아야 한다. 그나마, 참 다행인 것은 인터넷을 쓰윽 읽어보니 고구마순 김치는 껍질을 벗겨내는 것 말고는 김치 담는 방법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 그렇다면 이도 도전이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김치를 담아보자. 가장 시간이 걸리는 껍질 벗기기는 부모님이 다 해주셨으니 난 밭에서 딴 붉은 고추를 갈아 젓갈과 기타 재료만 섞어주면 된다.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버리려고 했던 고구마순이다. 어렵게 농사 지은 농산물을 부모님이 저리 살려주셨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웃에게 나눔을 했으니, 잘했다고 해야 하나?
글쎄다. 고구마순과의 전쟁은 평화협정으로 잘 마무리 했으나, 저 맷돌호박은 또 어떻게 한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