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10.11)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오랜만의 평화다. 오늘도 아침에 병원부터 다녀왔다. "수술, 아주 잘 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안대를 제거하니, 어제완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모든 사물이 너무 선명해서 어지러울 정도. 이렇게 세상이 선명하다니, 남편 얼굴을 바라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남편 얼굴에 기미와 검버섯이 천지라니, 장점도 단점도 모두 또렷또렷 보인다. 백내장이 끼어있던 희뿌연 안개가 싸악 사라졌다. 세상이 깨끗해진 걸까? 내가 깨끗해진 걸까?
우린, 병원 맞은편의 중앙시장에 갔다. 우연히 알게 된 시장에서 이미 깨알 같은 재미를 톡톡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tv에 나왔다는 닭강정을 샀고, 녹두전과 배추 전, 약식을 두루 먹어봤으니 오늘은, 만두와 족발을 포장해 왔다. 병원 다니는 핑계로 요즘 자주 외식을 하고 있다. 그도 쏠쏠한 재미가 있어 다음 주에 병원에 가면, 아마 우린 또 시장 나들이를 할 것 같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여유로운 오후다. 두 시간마다 안약을 투약하는 것 말고는 이제야 일상을 되찾았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파란 하늘이 더 높게 보이는 것도 다 수술 덕분이겠지?
그새 더 튼실해진 맨드라미 씨앗과 분꽃, 멜라포티움 씨앗을 받아 차곡차곡 통에 받아놓았다. 겨울 준비, 아니 내년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언제 이렇게 가을이 왔을까? 뜨겁게 보냈던 여름이 엊그제인데, 화살나무와 블루베리는 어느새 붉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전히 분홍분홍 피어 있는 섬색시꽃 옆의 다래나무와 황매화 이파리도 노랑색칠을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니 가을이 훅하고 나타났다.
짧아진 낮과 서늘해진 해. 서녘 하늘의 햇살이 이렇게 또 눈이 부셨단 말인가?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가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