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10.22)
그새 며칠됐다고 동생집이 내 집 같다. 오늘도 하루종일 가을비다. 뭔 가을비가 이리 자주 오는지, 비 때문에 전지도 할 수 없고, 풀도 뽑을 수 없다. 밖에서 하는 일을 할 수 없으니 오늘은 미뤘던 집안일을 해야겠다.
제일 힘들고 하기 싫은 청소부터 시작했다. 유난히 넓은 동생네 거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걸레질을 했다. 대걸레보다 힘이 들어가니 더 깨끗한데, 시간도 걸리고 힘이 든다. "엄마, 화분에 물 줬어요." 말씀드리니, "잘했다"며 좋아하신다.
이젠 부엌 차례. 냉장고의 오래된 반찬통을 비우고 정리를 했다. 며칠 전에 만든 청양고추 장아찌를 꺼내서 고추의 끝을 다 잘라주었다. 잘라준 곳으로 간장이 배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방법은 그라시아형님의 팁이다.

2시 30분에 예약한 횡성보건소엔 독감 예방주사 접종 줄로 인산인해다. 꽤 넓은 장소, 꽤 잘 깆추어진 보건소에서 일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시장을 보고 귀가했다.
드륵드륵, 벽체를 철거하는 공사중인 집을 둘러보았다. 뻥 뚫린 벽과 창문이 흉물스러워 보이지 않고, 그저 변화되는 모습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가 내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완공되어질까?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살림의 기본은 청소와 빨래, 음식인데 일차로 청소 완료. 리차로 빨래 완료. 이제 음식인데, 오늘의 요리?는 '과카몰리'다. 적당히 숙성된 아보카드의 씨를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낸 과육을 그릇에 넣고 으깨준다. 여기에 잘게 썰어준 양파를 넣고,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레몬즙을 약간 가미해 주면 완성이다. 토마토와 꿀을 넣어주는 사람도 있으나, 단것을 싫어하니 꿀은 생략. 토마토는 없어서 생략, 내 맘대로의 과카몰리가 완성되었다. 내일 아침에 빵에 발라먹을 예정이다.


저녁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5시에 이미 어둑어둑해지니, 가을인지 겨울인지, 깜깜한 밤이다. 난로를 지펴 온기를 피워야겠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오를 때 고구마도 구워서, 내일 아침엔 과카몰리를 머금은 빵 한쪽과 사과, 삶은 계란과 사과대추, 군고구마를 먹어야겠다. 크~, 식욕이 샘솟는 가을이다. 그러니 하루의 피로를 식욕으로 풀어본다.
비 때문에 소파 붙박이 될 뻔했던 하루. 그러나 비 때문에 시작한 집안일로 과로사할 뻔했던, 바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