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어쩌다 깍두기

요술공주 셀리 2024. 11. 2. 12:33

윗집은 지난 수요일에, 그 옆집은 오늘 김장을 했다. 다음주초에 영하로 뚝 떨어진다는 일기예보 때문이다. 게다가 고추며 배추, 무를 수확한 유기농 재료를 직접 담아주려는 부모님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쯤이면, 집집마다 자녀의 자동차가 나래비 서 있는 풍경은 여기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일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무와 알타리, 갓과 당근씨를 지난여름끝자락에 뿌렸었다.
그런데, 기나긴 여름에 더위를 먹었는지 무도 아직 애기, 알타리도 아직 애기 수준이다. 뽑자니 아깝고, 그냥 두자니 동사할까 걱정이다. 언제 자랄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 어른이 될지 기약할 수가 없으니 난감하다. 게다가 엄마가 저러고 계시니 김장이나 할 수 있을는지......

고춧가루를 가지러 이웃에 갔다. 넉넉히 농사지은 양질의 고춧가루를 운 좋게도 따뜻한 가격에 사게 되었다. 김장하려고 뽑아 놓은 이웃의 무는 크고 실했다.
"우와, 무가 이렇게 실하게 컸어요? 우린 씨를 늦게 뿌려 아직 한참 더 커야 해요."라고 했을 뿐인데 튼실한 무를 한 바구니 뽑아오셨다. 게다가 집에서 키웠다며 배까지 주시니, 남편과 대동하여 리어카로 운반했다.



수돗가에서 무를 씻었다. 씻고 나니 껍질을 벗겼고, 맨살의 무를 보다가 아, 깍두기를 담을까? 큰 걸로 6개를 골라 깍둑썰기를 하니 큰 그릇으로 가득이다. 마침 백숙용 찹쌀죽이 있어 새우젓과 마늘, 생강과 설탕, 고춧가루를 섞어 버무리니, 양념 완료. 계획에도 없던 깍두기가 얼떨결에 완성됐다. 토종백숙인 저녁 반찬으로 빛깔 고운 깍두기를 곁들이니 금상첨화. 수북이 담은 깍두기 한 접시를 남편과 둘이 싹 비웠다.
"오, 맛있는데? 이제 김치 도사네." 남편의 칭찬에 그만 오버를 한 게 화근이 될 줄 어찌 알았을까?
"엄마, 이것 좀 드셔보셔요."
"난, 노치원에서 밥 먹었어. 배불러." 하시며 한 개를 시식하더니
"난 좀 싱겁네." 하시면서도 계속 드신다. "우리 딸 김치도 잘 담네." 칭찬을 하시고는 엄마는 방에 들어가 셨다.

새벽 세시 반. 누군가의 비명 소리에 잠이 깼다. 아버지다. "왜 그래. 아!" 아버지가 악몽을 꾸시는가 보다. 그런데 "어미야, 어미야" 날 부르시는 게 아닌가? 잠옷바람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엄마가 이상해." 하시는데 엄만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로 몸은 축 늘어지고......
119가 도착해서 엄마는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이송 도중 다행히 의식이 돌아와서 주사 맞고, 약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급체로 어르신들은 그럴 수 있다고......

잠은 이미 달아났다. 잠을 못 잔 탓일까? 난 또 왜 배가 쌀쌀 아픈 거지? 엄마도 나도 너무 매운 음식을 갑자기 많이 먹은 탓이다. 꾸룩꾸룩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엄마를 위해 끓여놓은 흰 죽은 내 차지. 위염약을 먹고 동생이 전수? 한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가처치를 해주니 커~억, 트림을 내뱉고서 컨디션이 돌아왔다.

엄마, 깍두기가 정말로 맛있던 거야? 나야, 본인이 만들었으니 허겁지겁 먹었지만, 엄만 잠자리인데 간 만 보셨어야지, 왜 그걸 많이 드셔가지고...... 참으로 뒤숭숭한 1박 2일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1박을 한 깍두기. 통에서 하날 꺼내 먹어보니, 뭐야? 양념이 밴 이건 대박 아닌가? 어제보다 맛있다!
그래서  "얼떨결의 깍두기가 맛만 있더라"라는 신조어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웃프다. 엄마가 많이 아프셨으니......
김치냉장고에 넣어놓고 꺼내먹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던 오늘 새벽이 오래오래 생각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