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엄지공주님

요술공주 셀리 2024. 11. 4. 11:35

앗, 늦었다.
"자기야. 빨리 일어나. 큰일 났다 배추 너무 짜겠어."  
어제 절인 배추가 아무래도 짤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엄마의 절임방식은 늘 실패였기에, 작년부터 방법을 바꿨다. 그런데, 딸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엄마가 배추를 가르고 소금을 뿌려놓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내 방법을 추가했는데, 밤새 너무 절여질까 봐 걱정만 했지, 그만 또 늦잠을 잤다. 눈곱도 떼지 않고 내려왔으나, 이미 작업 종료. 엄마가 절인 배추를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정리하신 후였다.
"엄마, 추운데 왜 이건 하시느라......" 고맙기도, 죄송하기도 해서 멋쩍게 말씀드렸더니 "하나도 안 추워. 근데 배추가 너무 적구나." 하신다.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빗나가서 천만다행이다.
"나, 오늘 노치원 가지 말까?"
딸 혼자 김장한다고 도와주시겠다는 엄마에게 "윗집 이웃이 도와준다 했어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안심시켜 드리고서야, 미안타는 엄마를 간신히 배웅하느라 진땀을 뺐다.

날씨도 좋고, 참견하는 이도 없고 남편과 둘이 하는 여유로운 김장이다. 무와 갖은 채소, 양념을 넣고 생새우와 새우젓, 멸치액젓을 모두 챙겼다. 나만의 비법이라며 여름에 만든 고추청과 약간의 설탕, 고춧가루를 넣고 비벼주어 '김칫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깜빡, 찹쌀풀을 빼먹었다! 이런, 그제야 찹쌀을 꺼내 풀을 쑤었다. 오전에 김장을 하리라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이왕 늦은 거, 콩나물 황탯국을 끓이고 김치볶음밥을 해서 거? 하게 점심을 먹고 coffee까지 느긋하게 마시고서야 김장이란 걸 시작했다.

그런데, 애개개? 절여진 배추는 양이 너무 작아 배추 안에 속을 넣는 작업은 싱겁게 끝났다. 혼자 했는데도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5개나 씻어 준비한 김치통은 반이나 남았으니, 올 겨울 김치는 부족하지나 않을는지......

양은 작아도 모두 손수 지은 농산물이다. 알타리 김치 1통, 배추김치 2통, 이웃이 나눔 한 무로 깍두기와 동치미까지 했으면 됐다. 엄마가 마늘을 까서 찧은 마늘을 만들어 주신 덕분에, 새벽에 절인 배추를 씻어 준 덕분에 편안하게 김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주 잊어버리고, 가끔은 엉뚱해도 울 엄마 엄지공주님이 고마울 뿐이다. 고맙고, 감동이고, 매력 넘치는 그 엄지공주님. 나도 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