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손주가 왕이다

요술공주 셀리 2024. 11. 17. 17:52

"내가 남편 때문에 못살아 정말......"
맘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는 남편이다. 8시에 먹어야 할 아침을 9시가 되어도 아들네가 내려오지 않자 남편이 먼저 먹자고 채근을 한다. 아빠 생신이라고 애기 짐을 챙기고, 엄마가 부탁한 숙제를 하느라 아들 며느리는 어제 한 끼도 못 먹고 내려왔단다. 환경이 바뀐 손주 또한 밥을 먹지 않으니 속이 상한 아들네다. 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아이 씻기느라 9시가 넘어서 내려왔다. 기다리기 지친 남편은 결국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으이그, 남편님 10분만 참았으면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었건만......
그런데 남편이 미리 식사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 집 리모델링하는 작업자들이 쉬는 날이다. 때는 이때다하고 벽체만 세워놓은 짓다만 장작창고 지붕을 만든다고 남편은 숟가락 놓자마자 뒤꼍으로 향했다.

손주가 입 짧은 건 알고 있었으나, 손주는 안 먹어도 너무 안 먹었다. 밥 먹이기가 전쟁을 방불케 했다. 밥을 먹이는 동안 장난감과 책, 집안의 별의별 잡동사니가 다 동원되었다. 급기야 시력 나빠진다고 자제하는 핸드폰을 들려주고서야 몇 숟갈 받아먹는 손자. 내 손주도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 나가야 하는 건 아닌지......

점심은 외식하기로 했다. 추어탕과 순두부, 이런저런 메뉴가 오고 갔지만 아기의자가 있다는 추어탕집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밥보다 작업 삼매경에 푹 빠진 남편이 식당에 가지 않겠다 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식당에 다녀왔다. 창고 짓는 일이 저리도 중요한 일인 것인가???  

손주가 낮잠을 잘 시간이란다. 재우고 천천히 가면 좋으련만 차 안에서 재우겠다며 아들네는 귀경차에 올랐다. 아이들 배웅하러 잠깐 시간을 냈던 남편은 다시 뒤꼍으로 올라갔다. "잠깐 나 좀 도와줘" 해서 따라갔더니 벽체 위에 올라갈 지붕을 그새 완성해 놓았다. 그걸 같이 들어서 2m가 넘는 벽체 위에 올려놓자고 한다.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조수 몇 번해줬더니 50kg도 안 되는 날 장사로 아나?" 세상에, 이 정도의 작업은 건장한 남자 셋은 있어야 가능한 일이거늘, "이건 무리다. 이 무거운 걸 올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도 자기도 피투성이가 된다. 이웃 한 명 더 불러서 하자." 부탁하고 화도 내 보았지만 막무가내다. 무조건 직진인 남편이다. "아이고 하늘님, 부처님 도와주세요." 기도를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어디 함 해 보자고." 암튼 죽을 둥 살 둥 무거운 지붕 밑에서 머리통 깨지지 않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결국은 두 사람이 지붕을 올리고야 말았다.

12월까지 2주가 남았다. 2주 동안 남편이 해야 할 스케줄이 거미줄만 같다. 주말엔 새 집에 입주도 해야 하니 이사나 다름없는 스케줄도 소화해야 한다. 그러니 작업을 서두른 남편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마음에 안 든다. "자기야. 오늘은 아무리 바빠도 아빠를 위해 시간을 낸 아들과 손주, 우리 가족과 시간을 보냈어야 해."
이제, 아들 말에 귀 기울이고 우리보다, 아이들에게 집중하자고요.  손주가 왕, 그렇게 하자고요. '뭣이 중헌디' 란 말이 있잖아요. 그 뭣이 무어겠어요. 가족이란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