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와, 엄청 넓어졌네. 좋구나." 식전 댓바람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그동안 과도한 관심을 보이다 못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셨으니 완공 후의 집이 무척 궁금하셨을 게다. "왜 중문이 없냐, ㄱ자로 꺾인 부분이 맘에 안 든다, 터야 옳다, 방이 너무 넓다"는 등 참견하셨던 부분은 까맣게 잊으신 모양이다. 안방도, 부엌도 자세히 들여다보시더니, "잘했구나." 하신다. 엄마는 장소가 바뀐 현관을 한동안 찾으셨고 "엄마, 현관 못 찾으면 여기서 살아라." 하면서 부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남편도 나도, 바뀐 냉장고의 위치와 현관문을 자꾸만 전에 입력된 곳으로 찾아가곤 한다. "아이고, 내가 또 서쪽으로 갔네." 하며 웃곤 한다. "부엌에 가려면 10분이나 걸려. 너무 멀어." 그렇게 말하고 껄껄껄. 커피 한 잔을 들고 노랑 소파에 앉아 한 모금, 회색 소파에 앉아 한 모금. 구조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달라진 공간이 새롭고 기특해서 커피 한 잔으로도 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허허실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자기야. 밖에서 그만 놀고, 나 좀 도와줘." 계단을 만들고 있는 남편을 졸라 집안으로 불러왔다. 남편은 새로 만든 데크의 계단이 높다며 보조 계단을 하나 만들어 붙여놓았다.

실리를 추구하고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남편은 T. 난 재미없는 부엌 청소를 하다 말고 그림을 달아 달라 조르는 감성 충만하나 충동적인 F다.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내 뜻에 따라 남편은 그림을 달아 주었다. 무거운 화분을 옮겨주고, 해 달라는 장식품부터 세팅해 주었다.
그림을 걸고, 화분을 배치하고, 손길이 닿을 때마다 집 안에 풍경이 생기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것들이 난 참 재미가 있다.

"자기야, 여기 커튼 달게 봉 하나 달아줘." 주문을 했더니, 이 번엔 남편이 쓴소리를 한다. "창틀에 먼지 좀 봐. 이 흙가루부터 먼저 치워야지." 한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난 청소보다 커튼을 먼저 달고 싶으니 누가 청소 좀 해주면 안 되겠나? 청소는 내일 하고, 현관에 저 레이스 커튼을 달고 싶은데 말이지. 할 수 없다. 청소가 먼저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