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남자와 여자

요술공주 셀리 2024. 11. 24. 15:48

"와, 엄청 넓어졌네. 좋구나." 식전 댓바람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그동안 과도한 관심을 보이다 못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셨으니 완공 후의 집이 무척 궁금하셨을 게다. "왜 중문이 없냐, ㄱ자로 꺾인 부분이 맘에 안 든다, 터야 옳다, 방이 너무 넓다"는 등 참견하셨던 부분은 까맣게 잊으신 모양이다. 안방도, 부엌도 자세히 들여다보시더니, "잘했구나." 하신다. 엄마는 장소가 바뀐 현관을 한동안 찾으셨고 "엄마, 현관 못 찾으면 여기서 살아라." 하면서 부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남편도 나도, 바뀐 냉장고의 위치와 현관문을 자꾸만 전에 입력된 곳으로 찾아가곤 한다. "아이고, 내가 또 서쪽으로 갔네." 하며 웃곤 한다. "부엌에 가려면 10분이나 걸려. 너무 멀어." 그렇게 말하고 껄껄껄. 커피 한 잔을 들고 노랑 소파에 앉아 한 모금, 회색 소파에 앉아 한 모금. 구조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달라진 공간이 새롭고 기특해서 커피 한 잔으로도 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허허실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자기야. 밖에서 그만 놀고, 나 좀 도와줘." 계단을 만들고 있는 남편을 졸라 집안으로 불러왔다. 남편은 새로 만든 데크의 계단이 높다며 보조 계단을 하나 만들어 붙여놓았다.



실리를 추구하고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남편은 T. 난 재미없는 부엌 청소를 하다 말고 그림을 달아 달라 조르는 감성 충만하나 충동적인 F다.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내 뜻에 따라 남편은 그림을 달아 주었다. 무거운 화분을 옮겨주고, 해 달라는 장식품부터 세팅해 주었다.
그림을 걸고, 화분을 배치하고, 손길이 닿을 때마다 집 안에 풍경이 생기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것들이 난 참 재미가 있다.



"자기야, 여기 커튼 달게 봉 하나 달아줘." 주문을 했더니, 이 번엔 남편이 쓴소리를 한다. "창틀에 먼지 좀 봐. 이 흙가루부터 먼저 치워야지." 한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난 청소보다 커튼을 먼저 달고 싶으니 누가 청소 좀 해주면 안 되겠나? 청소는 내일 하고, 현관에 저 레이스 커튼을 달고 싶은데 말이지. 할 수 없다. 청소가 먼저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