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어느 일요일의 일기

요술공주 셀리 2024. 12. 9. 16:53

일요일이 이렇게 바쁠 일인가? 일찍 일어났지만, 거실 유리창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9시 반. 20분 안에 세수하고, 화장하고, 옷 갈아입어야하는데 휴~, 이걸 또 다 해냈다. 성당에 10시에 도착해서 독서 봉사를 무사히 잘 마쳤다. 그리고 미사 후엔, 홍보부 회의. 생각보다 길어진 회의 때문에 예정에 없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교우이긴 하나 처음 만난 사람과의 삭사였지만, 하비에르 형제님의 경험담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집에 귀가한 시간이 2시. 모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두 시간이다. 청소를 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거실에 옮겨놓았다. 미리 끓여놓은 생강차를 한 번 더 끓여놓고 과자도 접시에 담아 놓는다. 씻어 놓은 12개의 컵을 쟁반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나니, 그 사이 한 시간이 또 지나갔다. 앗! 그런데 부모님 저녁은 어떡하지? 걱정을 하니 "오늘 같은 날은 김밥이 좋겠네." 오, 어쩐일이야? 남편의 아이디어가 힘이 된다. 김밥 두 줄을 말아 콩나물국을 곁들여 엄마집에 배달을 하고...... "어휴,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생강차에 탈 찻잔에 꿀 한 숟가락을 미리 담아 놓았다.
3시 40분, 젬마 형님의 차가 제일 먼저 도착하고, 금세 10명의 손님들로 집 안은 북적북적. 오늘의 반 모임이 성황리에 시작되었다. 평소대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서로의 고백 시간으로 모임을 마무리하고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신부님이 도착하셨다. 리모델링한 새 집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신부님은 기도와 성수로 집 안 구석구석을 축복해 주셨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꽉 찬 느낌. 잔잔한 감동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반모임과 축복식을 마친 우리는 인근의 식당에서 송년모임을 가졌다. 토종 능이백숙이 오늘의 메뉴. 유명세를 탄 식당이라더니 고기도, 국물도, 내 입맛에 일단 합격이다. 백김치와 더덕구이가 특히 맛이 있었다.
남편을 비롯한 형제님들은 소주 몇 잔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더니 어느새 형님 아우가 되고,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반모임에선 얌전하던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커지고, "자주 봅시다." "오늘, 참 좋습니다." 하는데, 감기 기운 있으신 신부님의 얼굴도 환한 웃음꽃이다.
등이 따스운 시간. 여유로운 마음. 함께 하는 사람들의 눈에 사랑이 담겨져 있다. 같은 종교로 뭉친 이웃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으니 이게 바로 하늘님의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쁜 하루였고 피곤이 몰려왔지만, 오늘은 참으로 감사한 날. 축복 받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