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일기(12. 19)

요술공주 셀리 2024. 12. 19. 11:40

기상과 함께 시작한 내 일은 '소비'다. 첫 번째 일은 보일러 작동. 두 번째 일 역시 난로 피우기. 아침을 먹기 위해 인덕션을 작동하고, 커피를 내리기 위해 전력을 소비했다. tv는 덤, 역시 전력을 소모하고......
날마다 똑같은 루틴이 소비하는 일이라니 어쩐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었다면 기상과 함께 풀을 뽑고, 밭에 심은 작물에 물도 주고, 오이와 가지 등 갖은 채소를 수확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겨울은 소비의 계절. 봄, 여름, 가을은 생산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직 간접적으로 노동 대상에 투입시킴으로써 유용한 재화나 용역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생산'이라면 소비는 이와 반대 개념이다. 소비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재화나 서비스(용역)를 소모하는 일이라는데, 오늘도 나는 소비의 여왕을 자처하고 있다. 배고프니 먹어야 하고, 추위가 무엇보다 싫어 보일러도 틀고 난로도 때야만 하는 것이다. 적막함이 싫어 음악도 듣고, tv도 보고, 핸드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보일러가 한 시간 정도 작동하더니 실내 온도가 1도 올라갔다. 10시가 되어 나타난 햇빛이 거실 깊숙이 들어왔다. 11시 현재, 난로의 온기와 햇빛으로 실내 온도는 24도다.



난 집 안에 따뜻한 봄을 켜놓고 스웨터를 뜨고 있다. 아프지 않으니 행운이요, 행복이 별거인가? 따뜻한 집에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나 혼자 이래도 되는가? 이건 너무 사치 아닌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앗, 이건 과소비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말로 난 '합리적인 소비'를 했을까? 아니면 과소비를 하고 있나를 생각해 본다.  '비합리적 소비'는 '과잉소비' 즉 지출이 소득보다 과도한 것을 말한다. 그러니 '과소비'는 분명 아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랑하기 위한 '과시소비'는 더욱 아니고, 광고에 현혹되어 쓸데없는 구매를 하지 않았으니 '의존소비'도 아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적이 있으니 '모방소비'를 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는 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아, 그러고 보니 난 충동소비에도 자신이 없다. 그래도 어디를 보나 난  비합리적인 소비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난 '합리적인 소비자'일까? 바람직한 소비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일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는 만족과 관계되는 것인데, 만족을 극대화하는 소비행위이며, 이걸 잘했다면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할 수 있겠지?

겨우 내, 놀고먹기만 하더니 머리가 너무 앞서간 게다. 그깟 밥 한 공기, 김치 쪼가리 몇 개 먹고, 감기 걸리지 않고 건강 챙기려고 장작개비 몇 개 없앴다고 너무 자책하는 것 아닌가 싶어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난 '착한 소비자'다. 친환경을 생각하고 최소, 지구 온난화를 걱정해서 나름 아끼고, 재활용을 실천하고 있다. 게다가 난 '윤리적 소비'를 추구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싫어하고, 인권과 동물보호를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으니 현대의 소비 트렌드에 나름 노력하고 있다.  그럼 된 거지.  

그러나, 오늘은 하루 종일 소비한 날이다. 먹고(밥), 마시고(커피), 취해서(취미)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산책도 하지 않았으니, 이웃도 사람도 만나지 않은 날. 따뜻한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하루 종일 스웨터를 뜬 날. 우주의 중심인 나를 위해 온통 시간을 소비했으니, 나를 위해 투자한 날. 욕구 충족, 원하는 걸 충분히 했으니 대만족이다. 결국,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나섰다가  행복을 생산한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