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떡을 썰다가 집을 태울 뻔

요술공주 셀리 2024. 12. 23. 09:52

내가 사는 동네가 TV에서 언급되었다. 전국에서 제일 기온이 낮은 동네. 강원도 산골짝의 어젯밤 기온은 영하 20도,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집 앞을 흐르는 계곡이 꽁꽁 얼었다. 일 년 내내 주천강으로 달려가더니, 이때다 싶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단다.
그러나 나는 어제 너무 바빴다. 성당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데, 점심 후에 시작한 회의는 장장 세 시간. 집에 오니 오후 네시다. 부모님 저녁식사를 챙겨드리고, 남편의 출장 준비를 도왔더니 잠잘 시간이었다.

춥기로 유명해서 news에도 나온 이곳의 오늘 온도도 영하 20도. "너는 장작을 때거라, 나는 떡을 썰 테니......" 지난 주말에 빼온 가래떡이 꾸덕꾸덕해졌다. 한석봉 같은 아들은 서울에 있고, 남편이 출장 간 집엔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톡~ 톡 떡을 써는 도마에 부딪는 칼소리뿐이다. "내가 너무 일찍 서둘렀나?" 구정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떡을 했으니 말이다.

"언니, 추위 타는 언니 위해 캐시미어 스웨터 샀어." 연말에 귀국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크고 밝았다. 치과 치료 위해 잠시 귀국한다는데, 설 전에 출국한다니, 동생에게 떡국 한 그릇은 먹여야겠기에 서둘러 뺀 가래떡. 세 되는 절편으로, 일곱 되는 가래떡으로 뺐으니 "요 까짓 한 주먹거리네." 하며 시작한 떡 썰기는 "엇쭈, 요것 봐라. 장난이 아니네."였다. 절반쯤 썰었을 때 손가락이 쭈뼛쭈뼛, 팔목은 시큰시큰, 팔뚝이 얼얼한 게 마치 꾀병하는 사람 같아, 다리 아프다는 핑계로 난로 앞에 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했다. 난로의 온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나무 하나를 더 집어넣고 한참을 앉아 불멍을 했다. 작년 이맘때쯤엔 '봄타령'으로 엄청 칭얼댔었는데, 올 한 해는 집 리모델링을 하느라 시간을 잘 보냈다. 봄타령 할 시간이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난로의 나무를 뒤집는데 두어 개의 불똥이 난로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이쿠나, 집게로 다시 집어넣고 다시 떡을 썰었다. 타다닥, 톡톡. 타다닥 톡톡. 떡 써는 소리와 나무 타는 소리가 참 잘도 어울린다. "햇살 가득한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 먹이려고 떡을 써는 일도 참 행복하구나." 생각할 때, 햇살 사이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매캐한 냄새가 났다. 뭐지? 난로문이 덜 닫혔나?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고 불이야. 난로 밑의 종이 box에 불이 붙어 불꽃이 타고 있었다. 박스 안의 종이까지 불이 붙어 타고 있었는데, 난 떡을 썬다고 이러고 있었다니......

쌓인 눈이 살렸다. 불붙은 박스를 냅다 눈 위에 던지고, 연기 자욱한 종이 뭉치에도 눈을 덮어 가까스로 진화에 성공. 하마터면 새집을 홀라당 태울 뻔했다. 이웃과 2시에 산책을 가기로 했는데 그때였더라면......., 잠들기 전에 불똥이 튀어 이런 일이 생겼더라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이고 하늘님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쏟아졌다. 매캐한 연기 속으로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또 뭐가 있더라? 암튼 불조심, 또 불조심을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떡을 썰다가 도낏자루 대신 새 집을 날릴 뻔. 나도 살고 집도 살렸으니, 오늘도 난 행운을 잡았다. 참말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