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이 핀 날
겨울이 밤새 또 마술을 부렸다. 눈꽃 위에 서리를 내리다니, 겨울왕국에도 봄이 오는가 보다. 눈꽃보다 더 예쁜 서리꽃이 피었다. 눈꽃이, 풍성한 양과 색깔로 화려함을 어필한다면 서리꽃은 앙증맞으나 귀티 나는 분위기로 승부를 한다. 눈꽃의 화려함보다 소박한 서리꽃이 그래서 나는 더 좋다.

얼마 전까지도 난,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직접 그려서 지인들에게 보내곤 했다. 학창 시절엔 칫솔을 이용해 눈꽃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흰색 물감이 뿌려진 그 카드의 흰꽃이 오늘은 여기, 강원도에 내렸다. 그때의 눈꽃은, 지금 여기의 서리꽃을 닮았다.

올 겨울엔 왜, 내가 꽃타령을 안 하나 했다. 나는 왜 한겨울에 봄타령이요, 꽃타령을 하나 했더니, 그건 다 외로움 탓이었나 보다. 강원도의 혹독한 추위가 날 움츠리게 했고, 뽑아야 할 풀과 꽃이 없어서 외로웠었다. 풀도 꽃도 없으니 오롯이 혼자 겨울을 보내야 했다. 익숙한 도시생활을 잊게 한 강원도 신골짝엔 나무와 꽃이 생활의 터전이었는데, 삭막한 겨울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림공부가 사람공부가 되었고, 사람공부가 인생공부가 된 겨울. 올핸 그 겨울이 잘 넘어가나 했다. 작년엔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었다. 붓과 물감으로 적막강산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었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엔 달랑 한 점의 그림을 그렸으니 그건 게으름 탓이었을까?
할 일이 많았었다. 남편의 긴 휴가로 집 리모델링을 함께 추진했고, 이사 후엔 집 꾸민다고 겨울이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1월이 되자 동생이 내려왔다. 꽃타령, 봄타령할 틈이 없었던 게다.
"텅" 자동차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엇. 이건 동생 차 소린데?......
"언니, 남편이 밤새 고열로 고생했어. 나도 힘이 하나도 없네. 아무래도 서울 가서 쉬는 게 좋겠어." 하면서 동생부부가 출발을 했다. 동생은 보름 동안 머물렀지만 감기로 격리, 열흘도 함께 보내지 못했다. 뭐, 1달을 함께한들 충분할까? 이별은 늘 아쉬운 법. 아침 일찍 쌩~하고 가버린 동생 집엔 다시 적막강산. 초대도 하지 않은 무거움이 턱 버티고 앉아 있다. 부모님이 퇴근하면 저걸 또 만나야 할 텐데...... 작은딸이 간 걸 알면 엄마 가슴에 칼날 같은 서리꽃이 피어날 텐데......
햇살 가득 내리더니, 서리꽃은 싸악 사라져 버렸다. 서리꽃 진 자리에 서리꽃보다 시린 하늘. 새파란 하늘이 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