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1. 23)
오늘도 나뭇가지에 서리꽃이 앉았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오래 보지 않아도 예쁘다. 귀하디 귀한 꽃은 잠시 피었다가 해님을 만나서 그만 사라져 버렸다.
강원도 산골짜기는 서리꽃만 귀한 게 아니다. 사람 소리, 바람 소리, 자동차 소리와 그 흔한 개 짖는 소리도 겨울엔 귀하다. 온종일 합창을 하던 곱디고운 새소리도 찬 바람에 숨어버리고, 가끔 찾아오는 딱새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째깍째깍 시계소리만 들리는 산골짜기의 오두막집. 햇살 한 줌을 초대해 놓고 털실 조끼를 뜨고 있다. 비운다는 핑계로, 덜어내자는 변명을 하며 좋아하는 뜨개를 하고 있다.

"원주 갔다 올 때, 잠깐 들를게요." 안나가 온다고 한다. "어머나. 잘 됐어요. 기다리겠습니다." 스웨터의 주인이 온다고 하니 참 잘된 일이다. 스웨터는 처음부터 안나 것인 양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품도, 어깨도, 팔길이도 맞춤인양 잘 맞으니 기쁘고 뿌듯하다. 이 맛에 선물을 하나보다.
남편 동창 모임에 갔을 때 낯선 이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동안 외국에서 살다 오랜만에 참석했다며 반갑다고 나누어 준 전통 매듭 팔찌다. 그날 참석한 안사람이 어림잡아 20명이 훌쩍 넘는데 한 사람당 두 개씩을 선물했으니 일일이 만든 팔찌가 넉히 60여 개가 됐을 터. 받은 사람은 두 개지만 만든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색색의 실과 고리도 구매하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거고, 손가락이 많이 아팠을 텐데...... 그녀는 이 팔찌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도 아마 받는 이들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며 분명 기쁜 마음이었을 게다.
난 팔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에 외출할 때 변덕이 나면 착용을 했었고 동생이 준 팔찌를 한 1년 착용했지만, 그 겨울에 빼놓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예쁘다고 중국에서 산 옥팔찌도 며느리에게 준 지 오래다. 그러니 엊그제 받은 팔찌도 그 저녁에 빼서 화장품케이스에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안나에게 스웨터를 주면서 안나가 좋아해 주기를, 안나가 즐겨 입어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팔찌를 다시 꺼내왔다. 어쩌면 그녀의 마음도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자, 이 팔찌를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기뻐했을 시간만큼 나도 즐겨 애용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