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나는 목소리
"오늘은 봄날 같아요."
"눈이 많이 녹았네."
"우와, 고사리 좀 봐. 우리 봄에 고사리 캐러 오자."
봄볕처럼 따뜻한 오후에 헤레나 언니와 등산을 했다. 동네 뒷산은 매우 오랜만이다. 남향받이 뒷산엔 눈이 녹아, 질퍽한 땅에서는 미끄러질 뻔했다. 그러나 햇살을 받으며 오르는 산은 유쾌, 상쾌, 통쾌, 상큼 발랄 그 자체였다. 며칠째 극성이던 미세먼지도 사라진 산은 마치 봄인 듯 밝고 따뜻하다. 그러나 고사리만큼 많은 산딸기 가시 때문에 전진하기가 힘들다. 빨간 나뭇가지마다 뻗은 가시에 얼굴을 긁힐까 무서워 우린 골짜기로 내려와 앞산으로 진로를 바꿨다. 뒷산이 봄이었다면 앞산은 눈이 푹푹 빠지는 설산, 여전히 한겨울이다.
"언니 먼저", "아우 먼저" 뽀드득뽀드득 귀에 익은 눈 소리를 들으며 하산을 했다.
오늘은 지인들과 전화하는 날. 꿈속에서 만난 옛 동료들과 통화를 했다.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니 달려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여전히 자기 근황을 피력하는 사람. 손주 자랑과 자기 자랑이 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만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사람들은 별로 변하지 않음이 신기하기만 하다. 현직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말도 빠르고, 여전히 긴장이 깃든 목소리다. 낯 익은 목소리가 앞 서거니 뒷 서거니 하던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땐 그랬었지. 그 땐 경쟁이 미덕이었지 하면서 미소가 번졌다. 이젠 뒷짐을 지고 먼발치에서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동생까지 포함해 6명과 통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따뜻한 목소리와 여유로운 목소리에 목이 말랐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회에서 만난 비비안나 언니의 목소리가 있어 참 다행이다. 들어주는 사람, 상대를 먼저 챙기는 여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자는 언니의 따뜻한 말에 절로 힘이 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