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야의 밥상
작정을 하고 뒹굴뒹굴.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는 아침이다. 숙제를 다한 사람의 여유다. 서늘하고 상큼한 아침의 공기를 이불속에서 즐긴다. 늦잠꾸러기, 산골짝 겨울왕국에선 이 별명 하나면 충분하다.
꺼진 난로에 불을 붙이고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구수한 커피 향을 즐기고 있을 때, 카톡카톡~ 부지런한 이웃의 메시지가 분주하다.
"오늘, 나물 한 가지씩 해와서 오곡밥 해 먹을래요?" 헤레나 언니의 러브콜이다.
"예. 저는 취나물, 고사리, 가지 삶아놨어요." 부지런한 옥이는 벌써 나물을 삶아놨단다. 아이고, 이를 어쩐다? 난 변변한 건나물이 없는데..... 급히 냉동실을 열어본다. 열심히 찾았으나, 작년에 수산나가 준 고구마줄기와 호박 말린 게 전부다. 얼린 호박을 물에 불려 깨끗이 씻었는데, 끄트머리가 거뭇거뭇하다. 아, 에어프라이에 건조할 때 살짝 그을은 자국. 물에 불려 씻을 때 떼어내니 멀쩡한 나물로 살아났다. 냉동 호박은 인터넷 레시피대로 마늘과 들기름, 국간장으로 간을 한 다음, 파를 넣고 볶아내니 뒷맛이 달달한 호박 나물로 탄생을 했다.



열두 시 반, 오늘은 헤레나 언니집에서 모였다. 옥이는 강된장과 김, 가지나물과 취나물, 고사리나물을 해왔고, 언니는 엄나물과 두릅나물을 내왔다. 오곡밥과 물김치를 곁들이니, 오늘도 푸짐한 잔치가 벌어졌다. 모든 나물과 반찬은 신토불이. 다 각자가 농사지은 식재료다. 백화점에서도 살 수 없는 강원도산 농산물이니 먹어도 먹어도 살아 있는 자연의 맛이다. 비슷한 양념의 나물이지만 각각의 독특한 향이 있으니 나물마다 맛이 다른 게 신기할 따름이다.



유난히 나물을 좋아하는 난, 줄어드는 밥이 아까울 정도. 나물 한 젓가락 없어지는 게 아쉽고 아깝다. 김에 얹은 밥과 그 위에 얹어 먹는 강된장의 조합도 말 그대로 꿀맛이다. 과일과 인삼차, 일본 직송 초콜릿까지 채운 배가 보름달만큼 크고 둥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