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나봄
"왜, 찾으면 없는 거야?" 분명 데크에 있던 게 아무리 찾아도 없다. 에라 이 없으면 잇몸이 있지 하고 그냥 가위를 가지고 나갔다. 갑자기 뿅 나타난 해 때문이다. 무계획과 직진으로 오전에 한 일은 '전지'다. 키 자란 주목이 동생집과 하늘을 가리는 게 신경이 쓰였는데, 그걸 전지가위 없다고 가위로 하다가 그만 가위를 부러뜨렸다.

붓꽃과 꽃범의꼬리, 들국화와 쑥부쟁이 지고 난 마른 가지가 겨우내 눈 속에 묻혀있었다. 새싹을 틔우려면 저 묵은 가지를 없애야 하는데 그걸 오늘 잘라주었다. 전지가위는 없고, 가위는 망가져서 결국 손으로 잘랐다. 눈이 녹은 뒤에 했더라면 훨씬 쉽게 했을 텐데 급한 마음에 손가락이 쓸렸다. 눈에 젖은 가지가 잘 꺾이지 않아 힘으로 뽑다가 그리 된 것이다. 암튼 난 거칠고 막무가내인 똥손, 맞다.

이 모든 것의 화근은 유튜브 때문이다. 요즘 부쩍 올라오는 '꽃타령' 동영상을 보다가 생긴 일이니 누구 탓을 하랴.
'햇살 가득한 집', '남의 집 정원 구경', 청양의 '헤이 데이 가든', '예나나' 등, 아침에 시청한 유튜브만 대여섯 곳이다. 정원에 꼭 심어야 한다기에 시청했고, 풀을 잡아 주는 식물이 있다 해서 열어보았다. 관심이 가는 "키 작은 꽃나무'와 '월동이 잘되는 꽃'도 시청한 결과 '올라야'라는 꽃과 '스위트 로켓'이란 꽃씨를 주문했다. '설구화'와 '말발돌이', '수호초'도 구매 리스트에 올려놓고 꼼꼼히 메모해 놓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할 일이 태산인데 벌써 봄타령이라니......
그리던 매발톱 그림도 완성해야 하고 새로 시작한 성당 15년 사도 정리해야 하는데. 머리는 천천히 시작하자면서 몸은 이미 마음 내키는 꽃밭에서 이러고 있다.

워킹맘이었을 땐,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가급적 정석대로 일을 했었다. 중요한 일은 지금도 챙기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꽃에 관한 한, 풀에 관한 한 충동적이다.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아 관절이 나가고, 기미가 얼굴 가득인데도 제어가 안 되니 이 봄이 또 걱정이다.
가능한 충동구매 하지 말고 작년에 받은 꽃씨로 정원을 꾸미자가 올해의 목표다. 다만 집 리모델링으로 규모가 달라진 동쪽 정원과 잡초가 점령한 별채 앞 잔디를 꽃밭으로 바꿀 원대한? 계획에 따라 꽃나무와 꽃모종을 새로 들여야 할 것 같다. 나무와 꽃 심은지 5~6년 되었으니 큰 일 없겠지 했는데, 올봄은 많이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받아 놓은 꽃씨를 꺼냈다. 무얼 어디에 심을지 구상해 보는데, 아이고 설레라. 꽃샘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나는 또 봄을 향해 직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