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먼나라
정치 이야기라면 무조건 패스, 교육에 관한 내용이라면 시선고정. 허구한 날 상대방을 헐뜯고 거짓 투성이인 정치는 내게 먼 나라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럴수록 더 관심을 가져서 비판하고, 개선하도록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수산나가 내게 열변을 토하지만, 어쩌랴 tv를 보고 있노라면 화부터 치솟는 걸. news는 그래서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 되었다.
"이교감님이 정년퇴임을 해요. 그래서 F4모임을 하려는데 참석하실 수 있나요?" 동료였던 정교장의 목소리가 반갑고 또 반가웠다. "암요. 가야지요." 그래서 갑자기 서울행이 결정됐다.
우린 합이 정말 잘 맞았었다. 내가 맞언니였지만 4명이 모이면 못할 일이 없었다. 능력과 인격을 겸비한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 F4라 칭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응원하고 추진하는 일이 성과를 거두니 학교는 차분한 가운데 전성기를 누렸었다.
교무부장은 교감이 되고, 교감은 교장이 되었다. 막내 연구부장은 올해 교감연수를 받는다 하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오늘 모임은 이교감의 정년퇴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 여의도의 전망 좋은 식당에서 우린 만났다. 3년 만이다.

여의도에 근무할 때 가끔 오던 식당은 뷰맛집이다. 전경련회관 50층이 식당. 발아래, 한강과 국회의사당, 굽은 도로엔 미니어처 같은 자동차 행렬이 보인다. 장관이다.



도시음식이 고팠던 차에 오랜만에 리소토와 파스타를 시켰다. 우왕, 이 맛이지...... 아는 맛, 익숙한 맛에 미각이 살아난다.


동료를 만난다는 건 추억과 역사를 만나는 것. 함께했던 사람들과 학교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니, 우린 감자꽃 피는 6월에 강원도에서 다시 뭉치기로 했다. 은퇴한 지 3년이 지났다.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했다더라도 이젠 잊힐만한 사인데 그런 날 불러준 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아이들 소리, 차임벨 소리, 창문 사이로 들리던 자동차 소리가 새록새록 살아 돌아왔다. 고향 같은 곳, 그러나 이젠 먼 나라 이야기. 새벽 공기 가르며 출근하던 학교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왜 생겼을까? 아이러니하다. 언젠 40년 넘게 하던 일을 내 던지고 강원도로 내려갔으면서......
어둑어둑해진 강가엔 귀가하는 차량의 붉은 물결이 일렁인다. 원탁에 마주 앉아 환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들. 난, 왜 이 사람들이 여전히 좋은 걸까? 추억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창 밖을 본다. 무엇이 본질인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아니 하늘과 땅을 분리한 장치 유리창엔, 식당의 불빛과 한강의 풍경이 오버랩되어 마음마저 어지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