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에 생긴 일
어후, 졸려. 저녁 6시인데 긴장이 풀려서일까? 자꾸 졸음이 쏟아진다. 아들내외와 손주는 엊저녁 6시에 와서, 오늘 6시에 올라갔다. 손주 낮잠 시간과 자동차 이동시간을 맞추다 보니 자로 잰 듯 정확히 1박 2일을 보내고 갔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반찬보다는 내가 만들 줄 아는 반찬을 만들었다. 인터넷 레시피대로 만들었으니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수려한 맛은 아니다. 육류 위주의 저녁 상차림에서 가장 안기 있었던 반찬은 갈비도, 등심 구이도 아닌 의외의 것이었다. 간장, 식초, 설탕만으로 버무린 바다에서 자라는 해초였는데, 상큼하고 신선했다며 가족들이 찬사를 보냈다.

손주는 며칠 만에 더 커서 왔다. 그동안 단어만 나열하던 수준에서 문장을 구사하는 수준이 되었다. 전엔 '짹짹이'라고 하던 걸 '짹짹이 왔어."라고 표현을 했다. "바람이 불어 흔들흔들, 나뭇잎이 데굴데굴..."
"자동차가 슝 갔어."
"하부지가 지나갔어."라는 등, 두 돌배기의 언어 표현력이 제법이어서 우리를 자꾸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찌나 몸이 빠르고 힘이 센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일을 저지르니 잠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잠까지 설쳤다. 새로운 환경에 신난 손주는 자정이 넘어 잠들었고, 새벽에 깨어 한참을 울다 잤는데, 왜 나도 손주 따라 똑 같이 잠을 설쳤는지 원......
새벽에 내린 눈이 손주에겐 눈사람을 만들고 '차가운 눈'이란 체험놀이를 하기에 충분한 가회가 되었다. 바가지에 눈을 담아와 눈을 뿌리고, 날리고, 고사리 손가락이 빨개지도록 신나게 놀았으니 말이다.


며느리는 강원도 감자요리를, 작은 아들은 막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점심은 외식을 했다. 오늘은 '대성 막국수' 집을 찾아갔다. 이 식당은 즐겨 찾아가던 '다래' 와는 사뭇 다른 맛이었다. 작은 아들이 시킨 황태비빔막국수는 덜 매운 부드러운 맛.

큰 아들은 '온 막국수'를 시켰는데, 별도의 주전자에 따끈한 육수가 따로 나왔다. 마치 비빔냉면에 온 육수를 부어 먹는 맛 같다며, 별미라고 했다.

며느리와 난, '감자옹심이 칼국수'를 먹었는데, 이 집의 감자옹심이엔 만두 속 같은 속이 채워져 있었다. 메밀 칼국수는 기가 막히게 부드러웠고 들깨육수는 무한 고소했으나, 난 다래식당의 옹심이에 한 표를 더 주고 싶다.

손주의 잠투정은 늦잠으로, 늦은 아침과 늦은 점심 식사로 이어졌다. 된장찌개와 코다리찜이 있으니 저녁 식사를 하고 올라가라 했으나, 배불리 먹은 늦은 점심 때문에 모두 거절. 서둘러 짐을 챙겼다. 여유 있는 부엌살림과 밑반찬 몇 가지를 더 담았을 뿐인데 내려올 때보다 짐이 늘었다고 아들은 투덜거렸다. 그런데 그때, 남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주목을 끌었다. "우하하하, 글쎄 다민이가 tv 리모컨과 내 자동차 키, 저 플래시를 제 엄마 가방에 집어넣잖아?"
남편이 지켜보았으니 망정이지, 다민 하부지는 내일 차 키가 없어 출근도 못할 뻔......
"조심히 가."
"다민아. 빠이빠이."
두 식구만 남은 우리 집은 휑하기만 하다. "어휴, 난 손주 오면 tv도 못 보고, 왜 더 심심할까?" 참으로 이해 못 할 하부지다. 남편은 손주 바보인데도, 손주하고 놀아주지 못하니 심심하고. 난 손주 껌딱지여서 24시간이 모자라고......
하루 종일 "이게 뭐야?"라고 묻는 손주가 깜짝 선물을 남겼다. 최애 하는 '까까'와 '공룡 스티커'를 놓고 갔다.
"에고 손주가 제일 아끼는 저걸 어찌 두고 갔을까?"
잊고 갔겠지만, 우린 손주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자며, 어버이날에 오겠다는 손주를 또 기다리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