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아지랑이

요술공주 셀리 2025. 3. 6. 09:24

앗. 불이다! 옆집 지붕 위에 연기가 자욱하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살펴보니 아이고, 다행이다. 아지랑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속았으면 올핸 알아차릴 만도 한데, 또 불이 난 줄 알았으니 내 머리도 참, 작아도 너무 작구나 한다.



왜, 안 오나 했다. 해마다 불이 난 줄 나를 놀라게 하던 아지랑이가 올핸 건너뛰나 했다. 아지랑이를 보면 참 좋겠다 싶어 열심히 지붕을 쳐다봤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 봄이 되어야 볼 수 있는 아지랑이다. 햇볕이 그만큼 뜨거워야 볼 수 있으니 기다리던 봄이 왔구나 한다. 어제가 경칩. 정말로 봄이구나 한다.



아침에 서리꽃을 만나면 그날은 햇볕이 좋을 징조다. 오늘은 서리꽃도 아지랑이도 만났으니 기분이 좋다. 마구 가슴이 뛴다. 4월이 코앞인데 서리꽃만 피겠는가? 싹을 틔운 수선화도, 봉오리 맺은 산수유도 곧 필 것이다. 강원도 추위로 두 번이나 얼려 보낸 매화나무. 2년 전에 심은 여전히 건재한 매화가 올봄엔 꽃을 보여줄 수 있으려나......

아지랑이는 잠깐 피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에 밖에 나갔다가 계획에 없던 전지를 했다. 삐죽 튀어나와 유난히 키가 큰 박태기나무 가지 하나를 잘라주고, 섬색시 죽은 가지도 잘라주었다. 그런데 산수유를 덮은 잣나무 가지를 자르다 발견한 칡덩굴. 제법 굵은 가지에서 뻗은 덩굴이 잣나무와 산수유를 칭칭 감고 있었으니 에잇, 나쁜 녀석 같으니라구, 톱으로 밑동을 바싹 잘라주었다.



아지랑이 따라나섰다가 오늘도 큰 일을 했다. 나무를 칭칭 감은 칡덩굴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뜯어내주었으니 잣나무와 산수유가 숨통이 트였을 게다.
잣나무, 칡덩굴에서 날린 톱밥이 머리와 온몸에 난무한다. 겨울을 털어내듯 지저분한 톱밥을 탁 탁 털어낸다. 
그런데, 아니 벌써?
아침에 2층이던 눈사람이다. 지난 주말에 아들이 만든 눈사람. 며칠째 데크 테이블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만 눈 물이 녹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