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겁고, 지치고
동생과 함께 찐하게 보낸 이틀. 새벽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더니 잠이 부족하다. 어제는 저녁 식사만 같이 하고 일찍 헤어졌다. 부족한 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른으로 회복했다.
남편은 식전부터 숙원사업을 시작했나 보다. 삽질하는 소리를 따라 밖에 나가보니, 잔디 뜯어낸 자리에 흙을 채우고 있었다. 균형이 맞지 않는 땅에 흙을 채우기 위해 네 번의 리어카를 날랐다. 무거운 흙이 채워진 리어카를 남편은 앞에서 끌고, 난 뒤에서 힘껏 밀어도 언덕배기를 오르기가 힘들고 버겁다.

잔디를 뜯어 내느라 이미 힘이 빠진 남편의 작업이 진전이 없다. 꼼꼼한 성격까지 겹쳤으니 아무래도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밭에 거름 주기는, 오후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동생이 한국에 오면 그동안 그리웠던 걸 먹고 싶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어젠 추어탕을, 오늘은 감자옹심이를 먹었다. 투명하고 쫄깃한 감자 옹심이는 구수한 칼국수와 찰떡. 적당한 포만감과 따뜻한 햇볕으로 기분이 좋다.
두둑하게 채워진 에너지를 오후 내내 나무를 이식하는 데 쏟아부었다. 미리 세워둔 아치에 옮길 '인동'은 쉽게 떠서 금방 옮겨 심었는데, '백당나무'는 그렇지 못했다. 나뭇가지는 굵지 않으나 심은지 5년 된 나무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었다. 수십 번의 삽질로도 뿌리가 잘라지지 않아 톱까지 동원했는데도 땀만 나고 힘만 들었다. 땅 속 깊은 곳의 굵은 뿌리가 순조로울 리 없다. 그렇게 두 시간여 씨름을 하느라 우린 기진맥진. 심장은 벌렁벌렁, 팔다리도 후들후들. 철퍼덕 땅바닥에 앉아 벌컥벌컥 믈을 마시고 30분여를 쉬고 난 뒤에야 간신히 옮겨 심을 수 있었다.



"동생아, 미안한데 우리 좀 도와주라." 부탁해서 중요하고 긴급한 '밭에 거름 주기'를 간신히 끝냈다. 월요일에 밭이랑을 만들고 검정 비닐을 씌우기로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했다. 무리를 했다. 갑자기 잡힌 '로터리 치기' 일정 때문에, 저녁에 귀경하는 동생에게 부탁을 해서 너무나 미안했지만, 그만큼 우린 너무 지쳐있었다.
저녁 메뉴로 정한 숯불 바비큐가 돼지갈비구이로 바뀌었다. 다음 주초에 출국하는 동생에게 저녁을 해주려고 한 계획이 외식으로 바뀐 것. 그런데 달달한 숯불구이조차 당기지 않는다. 정말로 무리했나 보다. 입맛도 없고 어질어질. 그러나 억지로 먹은 음식이 기운이 났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입맛이 돌고 된장찌개와 함께 먹은 밥심 덕분이었을까? 기운을 차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다른 때라면 동생부부가 떠나 허전했을 텐데, 따뜻한 물로 씻고 쉬기 바빠 섭섭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기야, 다음부턴 오늘처럼 하루에 몰아서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라고 다짐을 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