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아들의 전화

요술공주 셀리 2025. 5. 3. 17:02

2월에 미장원에 다녀왔다. 비교적 짧게 커트했는데, 그새 단발이 되었다. 곱슬인 내 머리는 조금만 길어져도 여기저기 뻗치고, 구부러져 볼상 사납다. 미장원도 가고, 장도 볼 겸 우린 또 원주에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서 사람도 북적, 물건도 수북하다. 나름 메모해 간 물품을 차례로 사다가 삐끗. 찰깨빵과 더덕을 더 구입했다.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고 내려온다 했으니 겉절이용 배추와 손주 먹을 과일도 여러 종류 담아왔다. "아이고, 무거워." 남편도 나도 이미 중량 초과다.

이제부터 손주맞이 대 작업을 해야 한다. 이부자리를 털고, 세탁하고, 계절에 맞는 얇은 이불로 갈아주고, 청소하랴 식재료 정리하랴 바쁘다 바빠하고 있을 때, 찬물을 끼얹는 아들의 전화. "엄마, 다민이 폐렴 걸려 어쩌면 못 갈지도 몰라요."
"뭔 감기가 그리 오래간다냐? 열이 없어야 할 텐데, 어린이집이 힘들었나 보네."
"암튼, 토요일에 병원 다녀와서, 다시 전화할게요."
그렇게 금요일이 지나고 오늘이 토요일이다. 지금쯤 병원에 갔을까. 의사가 뭐라 할까. 손주가 조금씩 호전된다고 했으니, 당연 내려오겠지? 이런 생각이 들자, 손이 바빠진다. 김치를 담아야겠다. 배추를 다듬고, 자르고 절이고, 씻고, 버무려서 통에 담아둘 때까지 전화가 없으니 답답해 미치겠다. 온다? 안 온다? 동전을 던져볼까? 올 거야 다짐하는데, "애들 온대? 전화 좀 해봐." 어쩐 일로 남편이 채근을 했다.

"엄마, 다민이 절대 안정하라네요. 애기라서 약을 강하게 사용하지 못하니 지켜보는 저희도 힘들어요."
"그렇구나. 애기 건강이 먼저지. 너희도 조심하고 애기 잘 케어하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갑자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맥이 탁 풀려서 뭘 어찌해야 할지 생각도 뚝 끊겼다.

"엄마. 형한테 연락받았어요. 애기 아파 강원도 못 간다던데, 저도 6월에 갈까요?" 작은 아들의 전화다. "아니야, 아냐. 너라도 와야지. 어서 내려오렴."
아, 고마운 작은 아들. 오늘 막차로 내려온단다. 그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저녁 메뉴를 챙긴다. 오늘 와서 월요일에 간다고 했으니....... 머리를 획획 회전시키고 발등에 다시 불을 지핀다.

집에서 키운 엄나무 순과 두릅, 취나물을 차례로 삶아서 나물을 만들고, 튀김과 전 거리를 준비했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터졌다. 가족 먹거리가 부모님 먹거리니, 나야 그렇다 치고 아들이 어버이날이라고 내려오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불 앞에서 곰국 끓이고, 난 부엌에서 종종거리고 있으니......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자식들 손꼽아 기다리고, 목 빼고 서성이는 부모의 마음을. 어버이날이면 어떻고, 명절이면 어떠리, 자식들 입에 맛있는 거 들어가는 걸 보는 재미가 얼마나 짜릿한지 이젠 나도 알겠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