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또 다른 평화

요술공주 셀리 2025. 5. 12. 09:45

"아무래도 밭이 모자라... 풀 다 뽑고 밭 만들래."
"엄마. 거긴 아림이 꽃밭이에요. 풀 아니고, 꽃이구요."
2주쯤 전에 엄마가 무심코 하신 말씀이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동생이 정성 들여 만든 손녀 꽃밭. 손녀가 직접 '아림공주 꽃밭'이라고 손수 적어 팻말까지 만들어 꽂았건만, 한 번 꽂히면 직진하는 엄마 때문에 순식간에 꽃밭이 사라져 버렸다.



설상가상. 아버지는 마가렡도 풀이요, 접시꽃도 풀. 엄마가 시키시면 무조건 달리시니, 꽃고비와 끈끈이대풀, 매발톱까지 죄 뽑은 꽃밭에 거름을 뿌리셨다. 꽃밭은 이미 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손바닥 만한 밭에 세 포대의 거름을 뿌렸으니, 흙보다 거름이 더 많아졌다.



교회에 다녀오시면서 엄마는 고추와 가지, 토마토 모종을 사 오셨다. 부엌을 졸업한 엄마가 고추는 어디에 쓰실 거며, 가지는 따서 뭐 하실 거냐 묻는 딸에게 "내가 알아서 다 할 거다."라고 하셨다. 토마토는 가까이에서 따 드시라고 5주를 이미 심어드렸는데, 또 5주를 사 오셨으니 두 집 합해서 15그루. 여름이 되면 넘쳐나는 토마토를 난 또 어떡해야 하나?  

"아랫 밭도 풀 뽑고, 메주콩 심을 거야." 하시는데 참던 무엇이 순간 쿡 하고 올라왔다. "엄마, 안 돼요."
사위가 심은 더덕이 올라올 때쯤, 엄마는 옥수수 심는다고 더덕을 다 뽑으셨었다. 그게 작년 이었다. 그런데 이 번엔 동생이 아끼는 케모마일을 다 뽑아내고 콩을 심는다 하시니, 벌컥 화가 났다. "제발, 엄마. 하지 마셔요" 큰 소리를 냈더니, 결국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급기야, "내 밭에서 내 맘대로도 못하냐?" 화를 내더니 "내가 죽어야 해."라고 하셨다. 폭발하신 엄마의 분노. 이쯤이면 나도 깨갱해야 했는데, 어젠 내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와 데크에 앉았는데, 상한 내 마음도 풀리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마음을 다스렸는데, 두 분이 또 밭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급히 뛰어가 "늦었으니 내일 하시라" 했는데 "오늘 이거 다 심겠다"고 또 고집이시다.
잘 체하시는 엄마가 식사 바로 후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아버지는 검정 비닐을 씌우시니 나만 안절부절. 아이고, 저렇게 무리하다가 아프시면 안 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늘님, 부처님. 제가 잘못했어요. 치매 엄마에게 제가 너무 했네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 제발 우리 엄마 아프지 말게 해 주세요."
"엄마가 콩을 심던, 팥을 심던 뭐든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니 제발, 내일 아침 거뜬히 일어나게만 해주세요."



오늘은 월요일, 남편 출근 준비 소리에 일찍 일어났다. "아, 엄마"
밖에 나가 엄마 집을 바라보는데, 두 분 모두 어제 만든 밭에 나와 계셨다. 아버진 열심히 손 짓하며 뭔가를 설명하시고, 엄마는 뒷짐 지고 고개를 끄덕끄덕. 휴우~ 두 분 다 건강하시니 참으로 다행이다.
하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제 엄마에게 "하지 말라" 소리 하지 않을 테니, 우리 엄마, 건강하게만 해 주십시오.
오랜만에 일찍 뜬 해. 오랜만의 따뜻한 날씨가 이리도 반가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