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공주 셀리 2025. 5. 28. 12:11

내가 먼저 가자고 부추겼다. 계절의 여왕 5월이지 않은가? 산행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청년 같은 5월의 초록을 만끽하고자 그랬는데 정작 나만 빠졌다. 5명이 계획한 소풍은 그래서 4명만 출발했다.

여유 있게 데크에 앉았지만, 머릿속에선 우선순위를 세고 있다. 빨래하고, 현관과 2층을 청소하고 무엇보다 손주 놀이터인 텐트를 청소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해야겠지. 어른용 장조림은 먼저 꺼내고, 손주 먹을 것은 더 익혀서 부드럽게 해야 할 거야. 지난 설에 며느리가 잘 먹던 오이지무침도 오늘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손주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등을 생각하는 그 일조차도 신이 난다. 주말에 온다는 아들네와 손주를 본다는 일이 이리도 즐거운 일인 건가......?

빨래를 널고, 청소하고 있을 때 윗집에서 전화가 왔다. "언니, 얼른 칼 들고 올라와요." 누가 들으면 무시무시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칼과 바구니를 들고 올라간 밭에선 남자 두 분이 총각무를 뽑고, 여자 두 분은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었다. "아, 오늘 오후도 김치로구나." 어젠 단배추 김치를 오늘은 총각 김치를......
아, 난 언제 이 김치를 일이 아닌 것처럼 후딱 해치울 수 있을까? 여전히 힘든 김치 담기를 오늘도 큰 통 가득 만들어냈다.



이웃이 준 열무로 담은 열무김치, 어제 담은 단배추 김치, 5월 초에 담근 얼갈이. 내 냉장고엔 김치만 네 종류다. 부잣집 냉장고가 된 것이다. 김치통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새우젓 담았던 김치통을 비웠다. 담은 지 2주 된 새우의 비주얼은 90% 새우젓 모양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새우젓인 게 너무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도 김치를 마무리하고 나니 오후 5시다. 그러나 어제 깜빡 잊은 단배추 겉껍질을 삶아야 한다. 이파리를 씻어 들통에 삶아내니 초록색이 식욕을 돋운다. 한 입 크기로 썰어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을 했다. 소고기를 넣고 폭 끓인 물에 된장을 풀어 배추된장국을 해 먹기 위해서다. 동생 말로는 더 없는 건강식이라고 하니, 입맛 없는 여름에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




휴~, 겨우 소파에 앉았다. 좀 쉬어보겠다고 소풍도 안 갔는데 하루 종일 부엌일이라니, 부모님 퇴근 인사를 하고 오는데 빨간색 딸기가 얼굴을 내민다. 하루만 지나도 농익어버리는 딸기. 그래서 며칠 째 딸기 따는 루틴이 하나 더 생겼다. 그러나 열심히 먹어도 잉여 농산물이 되고 있으니, 모았다가 딸기잼을 만들어야겠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 그러니 오늘은 딸기까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뤄야겠다. 휴식은 내일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