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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 V는 무슨 꿈을 꿀까(진설아)

요술공주 셀리 2025. 6. 20. 11:24

(키: 30m, 중량: 1,400t, 주행 속도: 3,000km/h, 우주에서는 광속에 가까움, 화력: 로켓 주먹, 광자력 빔, 미사일 등 <나무위키, 2024>).

1976년 한국 어린이들의 친구로 찾아온 (로봇 태권 V)의 어마어마한 스펙이다. 이 놀라운 로봇이 애니메이션으로 살아 움직였을 때를 기억한다. 온 동네 어린이들이 극장에 모여 앉아 환호를 지르며 태권 V의 발차기에, 철이와의 호흡에 열광했을 그때, 만화를 마땅치 않아 하는 부모들까지도 역시 그 환호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더랬다. 오랜 시간 로봇은 아이들의 친구였다. 태권 V냐, 도라에몽이냐, 아니면 범블비냐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어린 시절 마음에 품은 로봇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우리는 태권 V의 어떠한 면에 열광했던 것일까. 그것은 물론 첫머리에서 밝힌 태권 V가 가진 경이로운 스펙일 것이다.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힘. 하지만 '로봇'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뛰어난 기술이나 물리력을 가진 대상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바로 그들이 우리 인간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부분에서다. 여러 초능력을 가진 다양한 영웅들이 서사 안에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로봇은 '강력한 물리력을 가진 인공물이면서 인간의 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지위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한 번 해 보자. 우리는 태권 V의 화려한 스펙 외에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예를 들어, 태권 V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전투가 끝나고 나면 기분이 어떤지, 쉴 때에는 전원을 끄는 것인지,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 태권 V도 우리처럼 꿈을 꾸는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태권 V의 실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를 생명이 있는 존재로, 나름의 정체성과 성격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친구'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태권 V도 역시 수많은 '로봇'들 중의 하나인 그저 추상적인 존재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