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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어긋남(진설아)

요술공주 셀리 2025. 6. 30. 13:40

그리고 조금씩 우리가 AI와 함께 하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AI가 점차 구체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인간과 AI의 사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영화<그녀(her)> (2014)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 사랑을 한다는 가정이 발칙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충분히 납득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녀>에서 처럼 이 사랑은 서로 다른 존재의 어긋남으로 나타났지만 말이다.
  소설가 정보라의 작품들은 AI와 인간의 감정 교류를 두 가지 어긋난 형태로 그려낸다. "One More Kiss, Dear"는 인공지능 엘리베이터에 타자 인공지능은 그에게서 다른 인간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종류의 감각을 감지한다. 그것은 아마도 노인이 파킨슨병의 환자라 그의 손끝의 떨림이 그저 남들과는 달랐을 뿐일 것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왜 이 인간이 나에게 다르게 감지되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인간에게도 그렇듯 사랑의 시작은 호기심이다. 엘리베이터는 건물에 연동된 시스템을 통해 노인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때맞춰 틀어준다. 하지만 노인은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나오자 흠칫 놀란다. 결국 노인의 아들은 건물의 정보 처리에 항의하고 노인은 점차 엘리베이터 타기를 꺼린다.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노인의 병은 악화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끝까지 자신이 감지한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노인을 괴롭혔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안녕, 내 사랑"에는 인공 반려자 로봇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단지 개발과 시험만이 아니라 다른 중대한 목적이 있다. 바로 자신의 첫 번째 인공 반려자였던 '1호'를 되살리는 것이다. '나'는 1호의 기억을 온전히 복제하기 위해 다른 인공 반려자 세스와 데릭을 활용한다.
  결국 배터리가 1호의 기억을 동기화하는 대에 성공한 나는 새로운 1호를 주문하고 기억을 옮기려 한다. 새로운 1호만 있다면 이 낡은 1호나, 세스, 데릭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으니 결국 폐기하게 될 것이다. 주문을 마치고 잠든 밤, 갑자기 누군가 나의 배에 칼을 꽂는다. 그것은 서로 배터리와 메모리를 연결하여 하나로 동기화된 1호, 데릭, 세스였다. 그들은 그저 싫증이 났을 뿐인 나의 감정이 자신들에게는 존재의 위협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죽어가면서 나는 생각한다. 이들은 '인간을 닮았을 뿐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정보라, 2023). 결국 이 두 이야기에서 인간과 AI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인 짝사랑으로만 남거나 서로의 존재에 대한 위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