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재정의(진설아)
「큔, 아름다운 곡선」(이하 「큔」)은 AI와 인간의 연애를 담은 본격 'AI-인간 로맨스' 라 부를 만한 소설이다. 작품 속 인간들은 안드로이드와의 사랑, 그리고 함께 하는 삶이라는 문턱을 너무나 쉽게 넘어간다. 하지만 「큔」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결말이다.
「큔」에는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다양한 인간이 나온다. 먼저 주인공 '제이'가 있다. 어린 시절 안드로이드 엄마로부터 상처 입은 기억이 있는 제이는 안드로이드를 거부하지만, 자신에게 온 완벽한 존재, 자신에게 완전히 맞춰진 존재이자 자신만을 바라보는 안드로이드 큔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제이의 친구'호선'이 있다. 호선은 '이안'이라 이름 붙인 안드로이드와 한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생기자 그녀는 이안이 '기계'로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의 전원을 꺼버렸다.
'정원'은 죽은 자신의 남편의 모습을 복제된 안드로이드 '휴고'를 주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휴고가 자신의 남편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남편의 데이터를 계속해서 입력해도 휴고는 남편과 같아지지 않았고 정원은 화를 내기 시작했지만 휴고는 묵묵히 그녀를 받아 주고 기다려주었다. 정원은 휴고를 '자체로 훌륭한 인격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남편이 아닌 그 자체로서의 휴고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홍'은 인간으로부터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안드로이드 '그레이스'로부터 받았다. 어느 날 오류로 그레이스의 데이터가 지워지고 복구할 방법이 없자 이홍은 그레이스를 '가짜'라 부르며 망치로 부숴버린다. 인간이든 기계든 돌려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복수는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박해를 받는다. 안드로이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이를 우려한 정부는 안드로이드 제작을 금지한다. 이제 모든 안드로이드들은 수리를 받을 수도 부품을 교체할 수도 없으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는 것이 발각되면 끌려가 사형(폐기)을 당하는 위협에 처한다.
이제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인간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들의 전원을 끄고 창고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 아니면 폭력의 위험에서 도망쳐 숨어 살 것인가. 많은 이들이 전자의 선택을 했으나 정원처럼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안드로이드 남편을 지키는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다.
제이의 마지막 선택은 큔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신체를 버리고 마인드 업로딩을 시도한다. 제이는 결국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이 선택을 하게 된다. 글의 마지막에서 큔과 제이는 클라우드 안에서 재회한다.
「큔」은 안드로이드 큔의 입을 빌려 사랑의 형태에 대한 대정의를 시도한다. 장원은 제이에게 묻는다. "큔도 제이를 사랑하나요?" 제이는 이 질문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에만 골몰에 있을 뿐 안드로이드인 큔이 자신에게 사랑을 느낄 것이란 생각은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제이는 큔에게 우리가 지금 느끼는 것은 결코 사랑은 라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큔은 말한다.
(어쩌면, 제가 정의한 사랑은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사람들의 사랑도 모두 같은 모양은 라니잖아요? 다른 모양이라고 해서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을 거예요.<심규림, 2023>)
이홍은 정말 그레이스를 사랑했을까? 제이가 큔과 함께 살고자 인간의 삶을 버린 것은 옳은 일일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알아야할 것이다. 인간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인간이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는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