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무럭 자란다

한판, 붙자구

요술공주 셀리 2022. 9. 19. 11:03

그래, 한 판 붙자!
이 여름이 지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잔디밭을 지날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너! 오늘은 토끼풀이다.
그 이쁜 초록 이파리 한 방울일 땐 보이지 않다가, 어느새 뽕알 뽕알 불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바다를 이루는 토끼풀이
여기저기 집을 지었다. 내버려 두면 집성촌을 만들 테니 오늘은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집 지은 토끼풀

영역 표시 확실해진 토끼풀

오, 그래? 이젠 대놓고 우리 집에 집을 지었다는 거지?
장갑을 장착하고, 아버지가 주신 신무기를 들고 돌진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녀석들이 잔디 뿌리랑 엉켜있으니 여러 번 찍어 파야하고, 게다가 꼭 돌멩이와 딱 붙어 있으니 생각보다 어렵다.

이 녀석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살펴보니, 원인은 가까이에 있었다.
옆집과 경계한 도로변에 여기저기 산발해 있는 게 아닌가! 어쩌랴, 원인을 제거해야 후환이 없지.
그렇게 시작한 '풀과의 전쟁'은 무려 1시간 반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토끼풀이 '바랭이'라는 아군을 데려와 공격을 해대니 정신이 없다. 앗, 따끔따끔 물어대는 개미도 저쪽 아군이다.
"그래? 너만 있냐?"
"나도 있다. 아군"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구름이 해를 가려주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니 전세는 내편이다.
게다가 여름이 지나면서 이놈들도 한 풀 꺾여 뿌리가 많이 약해져 있는 데다, 내겐 '갈고리'라는 신무기가 있으니
우후후, 오늘은 내가 이겼다.

힘 빠진 바랭이와 토끼풀

신무기, 갈고리


그런데, 이겼다고 해서 이긴 게 아니다.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에휴, 이 녀석들이 내년에 또 보자고 벼르고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풀들


싸움은 역시 힘들다.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오금이 저리고, 소화도 안 되고, 앉았다 일어나면 어질어질. 전세를 가다듬기 위해 휴식을 취한다.

전원에서 꽃 보고 새소리 들으며 어화둥둥하려면, 풀이랑 친해지고 벌레랑 같이 살아야 한다.
초록 바람과, 새소리와, 날마다 찾아오는 바람소리가 더 좋으니 참아내는 것이지.
그래서 또 이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