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대신 난로
남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한평생 일을 했으면 쉴 때도 됐건만, 70이 되어서도 일을 놓지 않는다.
주말엔 4시간여 운전을 하고 강원도에서 경상도까지 왕복 8시간을 운전해서 다니니, 37살도 아니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나이이다 보니 장시간 운전하는 것이 여간 걱정이 아니다.
결혼했을 때도 자수성가해야하는 처지에 서울에서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며 사우디아라비아로 휙 날아갔던 사람이다. 신혼부부가 3년을 그렇게 떨어져 살았었는데......
정년 퇴임해서 노년을 함께 하자고 강원도로 내려왔는데 남편과 아들은 아빠가 늦은 나이에도 일이 생겼다고 좋아했었다. 직장 생활하던 친구들도 "저녁에만 잠깐 만나던 남편과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너, 계 탄 줄 알아라" 하던데 그건 너희들 사정이고, 난 아니다.
남편의 일터가 열악해서 70노인네가 삼시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하니, 인스턴트식품과 손쉬운 육류 위주의 건강하지 못한 식단에다, 잔소리하는 사람 없으니 줄 담배는 기본이요, 혼자 적적함을 달래려 저녁마다 '술'이니,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에 거꾸로 가고 있으니 이건 아니다!
주말에 온 남편이 '난로'를 보러가자고 한다.
서울보다 기온이 3도 정도 낮은 강원도는 아침저녁으로 이미 겨울이다. 추위를 잘 타는 아내가 혼자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서?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나 혼자 있기 힘드니 12월까지만 일하고 그만 와라" 했더니 "그게, 회사 사정도 있고...." 하면서 얼버무리던 남편이다. 추우니, 난로 놓자고 조를 때마다 보일러를 팍 팍 돌려도 난로값보다 저렴하게 드니 난로가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2-3년을 버텨온 사람이다. 그랬던 남편이 몇백만 원이나 하는 난로를 사서 설치를 했다. 그것도 이틀 만에 후딱!
난로를 놓고보니, 좋기는 좋다.
의자 배치도 바꾸고, 휘파람 불며 가구를 이렇게 저렇게 재배치한다.
단열을 위해 장치한 벽돌을 가지런히 다시 쌓아놓고 남편은 경상도로 출발했다.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한 뒤에나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후유.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이다.
추분이 지나면서 어둠이 빨리 온다.
저녁식사를 하시고 부모님도 동생네 집으로 가시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된다.
여느 때처럼 문단속을 하고 tv를 켠다.
아, 난로가 있었지?
오늘 날씨가 따뜻한 건가? 밤이 되었는데도 춥지 않으니......
일찍 잠이 들었으나, 군인과 짐승들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가 새벽에 잠을 깬다. 아주 오랜만에 악몽을 꾸었으니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의 침대가 덩그러니 비어 있고, 극세사 이불을 덮고 있어도 긴 새벽, 마음이 시리다.
자기야. 제발, 12월까지만 일하고 같이 살자!
(난로를 들이다)
(가구를 재배치하여 통창에 풍경을 들이다)